간호사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주사 놓는 사람으로의 이미지가 굳어져 있어 그런지 “간호학과 가려구요.”라고 말하는 순간 가장 먼저 듣게 되는 말은 “오~ 주사 잘 놓겠네.”이다. “간호사 되는 거야? 와! 멋지다.”, “돈 많이 벌겠네.”, “정말 훌륭한 선택을 했어.”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요즘 같은 때는 매일매일 미디어에서 알람처럼 울려 주는 태움, 자살, 임신순번제, 군대보다 무서운 서열 관계 등 괴이한 이야기들이 간호사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로 자리잡아, 간호사에 대한 주위의 반응도 각양각색인 것 같다. 사실 간호사는 정말 멋지고 존경받아 마땅한 직업인데 말이다. 10년 넘도록 존경받는 직업군 1위에 간호사라는 직업이 올라가고 있는 미국과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이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본인이 다칠 것을 알면서 간호학과에 입학하는 학생들을 볼 때면 곧 타버릴 것을 알면서도 불빛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을 바라보는 것처럼 걱정스럽기만 하다. 게다가 학과 공부도 만만치 않고 대학 생활의 절반은 반 사회인처럼 병원 실습도 해야 하고 이후 간호사가 되어서도 환자 수 대비 턱없이 부족한 간호인력으로 3교대 근무를 견뎌내면서 환자들을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기에 간호사가 되는 것을 축하할 수만은 없기도 하다.

간호사가 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따라다니는 질문이 있다.
“병원에 몇 년이나 있을 거예요?”

교수가 되거나 간호직 공무원 또는 보건교사가 된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할까? 유독 임상에 있는 간호사들에게만 이 질문을 한다. 그만큼 간호사라는 직업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고,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가 없으면 이직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혹시, “안녕하세요. 저는 간호사예요.”라고 말하고는 ‘괜히 말했다.’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 묻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있었다. 비즈니스를 위해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간호사였다고 말하는 순간 가산점이 붙는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이 아니라, ‘아하, 간호사….’, ‘의사 밑에서 일하다가 못 견디고 무슨 사업을 한다고 나왔나 보네….’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느꼈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물론 이와 반대인 경우도 있다. “저는 간호사로 중환자실에서 근무했어요.”라고 소개하면 면허받은 간호사(RN)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분들은, “아! 그러시구나. 그럼 의료전문가시네요.” 하는 예도 있다. 이건 간호사를 정확히 아는 분들의 반응이고, 사실 대부분 사람은 간호사와 간호원을 구별도 못하고 호칭한다. 심지어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차이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드라마를 통해서 간호사의 역할을 처음 접한 사람은 병원 안내데스크나 진료실에서 이름 부르는 사람이 간호사인 줄 알고 있거나, 차트를 가슴에 꼬옥 품고 의사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역할만을 하는 줄 안다. 내가 하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거리로 나가서 길 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라. 아니 그냥 간호학 전공하지 않은 일반 친구들에게 전화 몇 통 걸어서 확인해 보면 알게 된다. 내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말이다.

간호사의 이미지는 또 어떠한가? 사람의 첫인상은 5초 안에 결정된다고 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미디어에서 등장하고 있는 간호사의 이미지는 어떠한지 한번 생각해 보자. 앞서 언급한 너무나 어두운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은지? 최근 간호사에 대한 기사들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리 밝지는 않을 듯하다. 간호사 이미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2015년 메르스 사태 즈음의 상황이다. 메르스의 공포로 전국이 떠들썩했던 이후 간호사의 위상과 이미지가 한동안 좋았던 적이 있었다. 사투를 벌이며 환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많은 간호사와 그들에 대한 기사로 인해 참 대단하고 멋지다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심어 주었던 것 같다. 바로 그거다. 그때의 이미지가 진정한 간호사의 이미지인 것이다.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는 희생과 이타 정신. 환자를 살리기 위해 메르스라는 감염병이 창궐하는 병원 현장을 떠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간호사들에 관한 기사가 우리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던 그때, 우리 간호사의 브랜드 가치는 매우 높았다.

한때 나는 간호사의 이미지에 관한 연구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이미지는 한 사람 또는 어떤 직군에 대한 호감도와 신뢰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경찰관, 소방관, 의사, 변호사, 간호사, 어린이집 선생님, 헤어디자이너 등 각각의 직업군을 말할 때 연상되는 이미지가 모두 다르듯 말이다. 나는 연구를 통해 의사, 간호사, 환자, 보호자, 일반인, 대학생, 간호대학생 등 1,500명이 넘는 대상자들이 가지고 있는 간호사에 대한 이미지를 알아보았는데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다.

우리를 가장 좋게 봐 주시는 분들은 직접간호 서비스를 제공받아 본 환자와 보호자였다. 그분들은 우리가 밤잠 자지 않고 자신들의 아픈 곳을 정성으로 돌봐 준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 감사해하며 고생하는 간호사들에 대해 마음 아파하셨다. 그다음으로 우리 간호사를 가장 좋게 보는 그룹은 다름 아닌 간호사 우리 스스로였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찌나 자랑스러워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간호사는 ‘책임감이 높다’라는 항목에서 환자 다음으로 높은 점수를 주었다. 또한 ‘신뢰하고 믿을 수 있다’ 항목에서도 다른 대상자들에 비해 아주 높은 점수를 스스로 준 것으로 나왔다. 살짝 얼굴이 뜨거워지면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 느낌은 무엇일까? 절대 이 부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 그림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환자·보호자 다음으로 너무나 우뚝 서 있는 막대그래프가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이면서 다른 대상자들의 결과와 너무나 많은 차이를 보인다. 연구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이걸 어찌 설명해야 할지 살짝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하긴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이 없으면 어찌 그 일을 감당하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결코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직종들도 그렇게 생각해 주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간호사에 대한 호감도 차이 연구결과도 매우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됐다. 보시다시피 간호사에 대해 가장 큰 호감을 느끼는 대상자는 환자와 보호자를 제외하고는 우리 간호사 스스로였다.

 

간호사는 ‘인간적인 배려를 한다.’ 항목에서도 간호사는 또 한 번 스스로 높은 점수를 주었다. 오 이런, 자기애 충만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실제로 간호사 중에는 환자를 위한 배려가 몸속 깊이 박혀 있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이건 병원을 규모별로 나눈 후 각 병원에서 근무하는 다양한 연차의 간호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기 때문에 간호사라면 누구나 인간적인 배려를 하고 있다는 결과가 우리 간호사들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였다. 실제 병원에서 견디지 못하고 나오는 신규간호사들은 선배 간호사들에게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며, 기억을 떠올리기도 무섭다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친다. 다시는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순간의 연속이었다고도 말한다. 간호사 스스로 ‘배려한다.’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마도 환자에 대한 배려를 의미하는 것이겠지? 라며 연구결과를 최대한 합리화시키려 노력해 본다. 그런데 얼마 전 내가 병원 신세를 지게 되어 상급종합병원을 방문했던 경험을 되짚어 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환자가 된 나에게 간호사가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간호사 스스로가 자기 기준에 의해 타인을 엄청나게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물론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쯤 되면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다음의 두 결과도 매우 흥미롭다. 간호인력으로 같이 일하고 있는 간호조무사들이 우리 간호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지가 명확히 나오는 결과이다. ‘간호사는 이타적이다’라는 항목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나란히 가장 높은 점수를 주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좋다. 왜냐하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듯이 아픈 사람을 간호하는 행위 자체가 이타적이기 때문에, 이 결과는 어쩌면 당연히 받아들여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를 바라보면서 ‘아니다 간호사는 절대 이타적이지 않다’라고 확고하게 생각하고 있는 무리가 있었다. 간호사는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그들은 바로 간호조무사 그룹이었다. 잠깐, 여기서 발끈하지 않기를 바란다. 간호조무사 그룹이 병원 내에서 간호사와 같이 근무하면서 느낀 점이 이러하다는 것에 대해 결과만 가지고 흥분하면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calm-down 하라고 훈련받지 않았는가.
 

분명히 우리와는 같은 계열에 있어도 교육받은 정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는 그룹인데 왜 그래야만 할까? 왜 자꾸 그들과 밥그릇 싸움을 하려고 할까? 직업의 명칭에서 나타내고 있는 것 그대로 간호사의 일을 더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우리를 보조하도록 교육하고 이끌면 안 되는 건가? 그들에 대해 학원 출신의 간호조무사라고 직업 자체를 비하하며 간호사의 영역을 침범하는 대상으로 자꾸 이슈화시키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행동과 요구에 민감하게 날을 세우고 대립 구도를 갖는 것 자체가 어쩌면 나와 동일한 직군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이러다 보니 간호조무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이마에 주홍글씨가 찍히게 된다. 현재의 이러한 모양새는 나로서는 이해 불가다. 자꾸 맞붙어서 싸우려고만 하다 보니 이런 기본적인 정보를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같은 부류끼리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인정하지 못하면서 그저 비난하고 헐뜯는 무리가 간호사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대인배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분노하고 늘 화가 나 있고, 예민하고, 날카로워진 상태로 전투태세만 갖추고 있지 말고, 여유롭고 품격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일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네요.”, “제가 지시한 것은 다 하셨나요? 감사해요.”, “우리가 뭐 더 알려드려야 할 것은 없나요?”, “더 필요하신 교육은 없나요?” 하면서 간호조무사들의 필요를 채워 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 주면서, 간호사의 ‘師(사, 스승)’ 자의 의미대로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보여야 맞는 것 아닌가?

믿어지지 않겠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지방에 있는 준종합병원이나 서울 근교의 요양병원에 가 보면 간호조무사가 간호과장인 경우도 있고 수간호사 역할을 하는 예도 있다. 물론 흔한 일은 아니겠지만 유휴 간호사였다가 병원에 오랜만에 재취업된 경우에 이러한 시스템을 보고 깜짝 놀라서 나에게 제보를 해 온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 않으려고 하는 자리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들에 대해 무조건 총부리를 겨눌 것이 아니라, 이렇게 되어 버린 시스템을 개선하고 하나씩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한 선생님이 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회의나 학회 등에서 처음 보는 간호사를 만나게 되면 반가움이 앞서기보다 거리를 두게 되는 나를 보게 된다. 아마도 나의 선입견 속에, 늘 화가 나 있고 자기만 잘났다고 눈을 치켜세우기에 급급한 간호사의 이미지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그런 부류의 간호사인 거 아니야?’ 하면서 선뜻 다가서는 것이 쉽지 않다. 이는 비단 나만 겪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혹시 나를 태우던 그 간호사의 지인 아니야?’ 하는 생각과 병원에서 겪었던 엄청난 트라우마로 인해 서로 간에 반가워하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힘든 점을 토로하기보다는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 버리는 간호사들을 정말 많이 봐 왔다. “어머, 간호사예요? 선생님 반가워요!”라는 말보다는 턱을 치켜들고 입술을 삐쭉이면서 “선생님 학부가? 어느 대학 출신이지? 아, 거기 3년제?”, “아, 거기 지방에 있는 학교?”라고 툭 던지며 뒷말을 흐리는 간호계 어르신들을 만나 뵙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인배의 삶을 살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배워 온 우리가 스스로 대인배가 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나만이 가지고 있는 무기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잘 점검하고 확인하길 바란다. 그리고 누구보다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스스로에게 가장 좋은 보약이 될 것이다.

자신 보다 못났다고 생각하는 대상이 자기와 같은 직종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게 되면 우선 우리는 우선 깔아뭉개고 시작한다. ‘교수라고 다 같은 교수인가?’라고 말하면서 마치 이단교를 조심하라고 경고하듯 겸임교수, 초빙교수라 불리는 사람들의 교육을 조심하라고 개인 블로그에 버젓이 적어 놓은 사람도 보았다. 자신은 진짜 교수 출신이라고 강조하면서 가짜 교수들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교수는 대학교 강단에 서서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가짜 교수라니? 아니 그럼 우리는 학생 때 진짜 교수, 가짜 교수 중 누구한테서 배운 거란 말인가. 어쩌면 간호학과가 많이 생기면서 더불어 간호학과 교수들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교수라고 말하는 사람의 자질이 의심스럽다면, 차라리 정말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가르치고 있는지 질문해 보라고 한다거나 최종적으로 받은 학위가 석사인지 박사인지를 알아보라고 말해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자신이 하는 교육과 교재만이 진짜이고 다른 것은 모두 사기꾼으로 취급해 버리는 몇몇 교수님들의 행태가 이해되지 않아 마음 한편이 고구마를 백 개 먹은 듯 답답하다. 간호계를 돌아보면 여기저기에 하수들이 널려 있다. 위나 아래나 전문가다운 모습은 없고 아마추어들의 잔치가 벌어진 듯하다.

이렇게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인 양 우쭐대다가 우스운 꼴을 당할 수도 있다. 이즈음에서 나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는 아니었나를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내 눈의 들보보다 남의 눈의 티는 언제나 더 커 보이는 법이니까. 진짜 고수는 결코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헐뜯거나 무시하려고 날을 세우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실력으로 보여 줄 뿐이다. 이렇게 차츰 무림의 고수가 되어 가다 보면 간호사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도 점점 진정한 고수를 바라보는 존경의 눈빛으로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널스브랜딩』 중에서

저자 김명애

발행 포널스출판사

302쪽

판형 148*210

가격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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