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대란에 대비해 정부가 군병원 12곳 응급실을 민간인에게 개방한 20일 오후 의료진들이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응급실로 민간인 환자를 옮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대란에 대비해 정부가 군병원 12곳 응급실을 민간인에게 개방한 20일 오후 의료진들이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응급실로 민간인 환자를 옮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간호사들이 최근 집단 사직으로 진료를 중단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일을 대신하며 업무 가중으로 인한 탈진을 호소하고 있다. 의사들의 업무 공백, 환자들의 불만에다 관행처럼 이어지던 불법 의료 행위까지 떠맡다보니 과부하가 걸렸다는 증언이 나온다. 또 환자의 수술·진료가 미뤄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도 엿보인다.

지난 19, 20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현장을 떠난 의사들의 업무와 환자들의 컴플레인(불만)을 모두 떠맡았다"고 토로했다. 이곳 전공의들은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19일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출근하지 않았다.

"PA 간호사 적극 활용하라는 정부? 엄연한 불법"

▲ 발걸음 옮기는 의료진들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1∼3년 차를 포함한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정민
▲ 발걸음 옮기는 의료진들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1∼3년 차를 포함한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정민

원래대로면 담당 주치의가 전공의 업무에 투입돼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간호사들의 전언이다. 

세브란스병원 내과에서 일하는 간호사 A씨는 "환자 몸에 난 심각한 욕창과 암 상처 부위를 주치의 교수님께 소독해달라고 하니 '할 줄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며 "원래 인턴이 하던 일인데 진료가 딜레이(연기)되면 안 되니까 간호사들이 어쩔 수 없이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내시경 검사가 예정된 암 말기 환자에게 퇴원을 권유했다가 보호자로부터 심한 항의를 듣기도 했다"며 "의사들이 대책 없이 업무를 중단하면서 환자들이 무방비로 방치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간호사 B씨도 "주기적으로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의 경우 전공의 파업으로 다음 입원이 무기한 미뤄지고 있다"라며 "이에 따른 불안감으로 환자들이 컴플레인을 걸고 있는데, 그 모든 항의를 간호사들이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간호사 C씨도 "간호사뿐만 아니라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원무관 직원까지 환자 컴플레인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피에이(PA)'라고 불리는 전담 간호사가 기존 의사 업무를 아예 덮어쓰게 될 거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전공의 진료 거부 해결책으로 PA 간호사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PA 간호사는 합법이 아님에도 현장 사정을 고려해 사실상 묵인된 채 운영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1만여 명 규모로 추산된다.

간호사 A씨는 "그동안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지도 않더니 이제는 PA 간호사를 대놓고 쓰겠다는 것이냐"며 "(간호사들이) 간호법 제정을 요구할 땐 한 마디도 없다가 다시 의료 공백이 발생하니 이를 간호사들한테 메우도록 하는 상황이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C씨도 "PA 간호사를 불법으로 규정할 땐 언제고 막상 인턴과 레지던트가 없어지니 이들을 대안으로 쓰겠다는 상황이 어이가 없다"라며 "정부가 사실상 PA 간호사의 역할을 인정하는 꼴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드레싱, 관장까지 떠맡아... 두 장짜리 업무인계서 전부"

▲ 간호협회 ‘의대정원 확대 지지한다’‘ 대한간호협회는 14일 오전 여의도 국회앞에서 ‘의료개혁 적극 지지 및 의료정상화 5대 요구사항 추진 촉구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의대정원 확대를 통한 정부의 의료개혁을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 을 밝혔다.ⓒ 권우성
▲ 간호협회 ‘의대정원 확대 지지한다’‘ 대한간호협회는 14일 오전 여의도 국회앞에서 ‘의료개혁 적극 지지 및 의료정상화 5대 요구사항 추진 촉구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의대정원 확대를 통한 정부의 의료개혁을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 을 밝혔다.ⓒ 권우성

다른 병원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관장이나 유치도뇨관 삽입처럼 인턴이 하던 중환자실 업무를 남자 간호사들이 떠맡아서 하고 있다"(서울 종합병원 간호사 D씨), "드레싱(상처나 수술 부위 소독)마저 전공의 대신 간호사가 직접 하라는 지침이 내려 왔다"(국립암센터 간호사 E씨) 등 업무 가중 증언이 쏟아졌다.

수도권 소재 종합병원 2년 차 간호사 F씨는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우리가 전달받은 건 두 장짜리 업무 인계서가 전부다. 현재 남자 간호사들이 인턴 업무를 대신하고 있고, PA 간호사에게 환자 상태를 전달하고 보고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지면 보호자에게 설명을 드려야 하는데 면담할 전공의가 없어서 간호사들이 가운데서 모든 민원을 듣고 있다"고 전했다.

젊은간호사회 소속 한 간호사는 "이번 전공의 파업 전에도 이미 전공의가 부족한 병원에서는 간호사에게 의사 업무를 전가하는 일이 빈번했다"며 "간호사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범위 이외의 업무를 거절하지 못하고 시행하는 상황이 생길까 봐 두렵다. 전임의와 교수들이 언제까지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전했다.

행동하는간호사회 소속의 다른 간호사는 "비수도권으로 갈수록 의사 업무를 간호사가, 간호사 업무를 간호조무사가 맡게 되는 게 의료계의 현실"이라며 "이 구조를 바로잡으려면 의대 증원과 함께 간호사들이 의료법에 규정된 업무 범위 내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간호사들은 계속해서 소진될 뿐더러 이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간호사 1인이  담당하는 환자수가 너무 많아 이미 일상이 탈진인 상황인데 수련의 전공의 업무까지 떠맡게 된다면 현장을 떠나는 간호사들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간호사가 1인당 맡을 수 있는 환자의 최대 수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집단 사직에 나선 전공의들은 정부에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며 정부가 예고한 '업무개시명령'을 "기본권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20일 긴급임시대의원 총회를 열어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의 21일 발표에 따르면, 20일 오후 10시 기준 전공의 8816명(71.2%)가 사직서를 냈고, 이 중 7813명이 근무지를 떠났다. 

▲ 전공의협의회, '의대 정원 확대 반대' 긴급 임시대의원총회 개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에 돌입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강당에서 긴급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었다.ⓒ 권우성
▲ 전공의협의회, '의대 정원 확대 반대' 긴급 임시대의원총회 개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에 돌입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강당에서 긴급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었다.ⓒ 권우성

 

 

출처: 오마이뉴스(https://v.daum.net/v/20240221143003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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