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학병원에서 3년째 연구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20대 박모씨는 병원에서 주5일 오전 9시~오후 5시 일하며 교수의 임상연구를 돕는다.

연구대상자 관리와 환자 데이터 처리를 주로 한다. 직원 의무교육도 함께 받는다.

하지만 병원 정규직 노동자와 처우는 천양지차다.

4대보험(건강보험·국민연금·산재보험·고용보험)조차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탓에 지난해 전셋집을 구하면서 ‘무직자’ 신분으로 대출을 받아야 했다.

박씨는 병원이 아니라 교수 개인에게 속해 있다 보니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그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원래 계약서는 안 쓰는 거라고 해서 (처음엔) 그런가 보다 했다”고 했다.

4대보험 모두 보장받지 못한다.

건강보험은 직장가입자가 아니라 지역가입자로 들었다. 급여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박씨는 “일 시작 시점보다 많이 올려주긴 했지만, 연봉에 대한 (교수) 본인만의 기준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씨가 앞서 다른 병원에서 3교대 간호사로 일하다 연구 간호사가 됐다. 몸이 더 편하고 교수와 팀 분위기도 좋지만,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이다.

온전한 일자리라고 보기는 어려운 노동 환경과 처우 때문이다.

▲연구간호사 박씨가 지난달 25일 근무하는 병원 내 카페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기자와 인터뷰한 전·현직 연구간호사들은 모두 박씨처럼 비정규직 신분이었다. 2년 이상 일했어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박씨처럼 계약을 아예 맺지 않거나, 병원이 아닌 교수 개인과 계약을 했다.

‘주먹구구’ 고용이다 보니 계약 당사자가 아닌 교수를 위해 일하기도 한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연구간호사로 1년여간 일했던 한모씨(29)는 진료과 대표 교수와 근로계약을 맺었는데 실제로는 교수 4명의 연구 업무를 지원했다. 월급은 각 교수가 100만원, 50만원, 30만원 등으로 나뉘어 줬다. 급여체계가 없다 보니 가능한 일이다.

한씨는 “구인 카페엔 비교적 낮은 금액대를 급여로 제시하는 공고들이 자주 올라온다”며 “병원 소속이었다면 체계에 맞게 연차나 수당이 보장되고 급여도 200만원 중후반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4대보험도 제각각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연구간호사로 1년 반 정도 일한 20대 A씨는 “저는 2대보험(산재·고용보험)이라도 가입돼 있지만, 채용 공고를 보면 그조차 해주지 않는 곳들도 있다”며 “투약이나 채혈 시 찔림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서 적어도 산재보험은 돼야 한다”고 했다.

연구간호사들은 결국 교수가 ‘좋은 사람’이기만을 기대해야 한다. 좋은 교수를 만나지 못했다면 참고 일하거나 나가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다. 연구간호사로 일할 당시 한씨는 적은 급여에 대해 한 번도 불만을 표하지 못했다. 한씨는 “계약했던 대표 교수님이 (업무에 필요한) 서명이나 도장 찍는 것도 귀찮아하셔서, 급여가 적은 것 같다는 얘기는 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지난해 7월 한 카페에 올라온 서울의 한 대학병원 연구간호사 채용 공고. 장기근속을 선호하지만 퇴직금은 없다. 네이버 카페 캡처

 

병원 내 임상연구는 증가하고 있다. 2022년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를 보면 임상시험계획 승인 건수는 2004년 136건, 2014년 653건, 2021년 842건 등으로 증가 추세다.

연구간호사의 연구 지원도 상시·지속 업무다.

박씨는 “연구는 한 개 이상이 동시에 진행되고, 한 연구가 끝나도 다른 연구가 또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병원은 임상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연구간호사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하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2022년 서울대병원 국정감사에서도 연구간호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가 불거졌는데, 서울대병원은 ‘교수가 개인적으로 채용·관리를 하고 있어 병원에서 세부 사항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안종기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기획조정실장은 “3교대 간호사의 노동강도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은 데다 전체 간호사 중 연구간호사의 비중도 크지 않아서 (이들의 노동권은) 논의에서 배제됐다”며 “노동권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주먹구구 고용 등이) 공공연하게 관례로 이뤄져 와서 논의가 커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병원이 안에 있는 사각지대 노동자들을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운영위원장은 “결국 노동이 이뤄지는 곳은 병원”이라며 “병원이 플랫폼 역할만 하려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는 적절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 정책위원장은 “병원이 아니라 교수 개개인이 책임을 지면서 연구의 외주화가 이뤄지는 셈”이라며 “환자가 몇 명 올지 예상해 일정한 의료 인력을 유지하듯, 병원에서 진행하는 임상 연구에 대한 인력도 직접 고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출처 :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2402151459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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