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보직을 맡은 지 며칠 되지 않아 간호사 4명을 포함해 여직원 6명의 사직서를 받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91년 3월 연세의료원 세브란스병원에 간호, 약제, 의무기록, 영양, 의공학 등 5개 진료지원부서를 담당하는 ‘진료지원 부원장’ 제도가 새로 생겼고, 필자가 임명됐다.

필자는 1982년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했는데, 이듬해에 병원 부원장 제안을 받았지만, 교육과 연구에 집중한다며 보직 제안을 사양했다. 또 의대 졸업 후 병원행정에 관심을 두고 공부했고, 1977년부터 보건대학원의 병원행정 강좌를 담당하면서 병원을 운영하는데 개선할 사항을 꾸준히 챙겼기 때문에 임무를 맡겼던 것 같다.

임상의사가 아닌 의대 출신이 병원 보직을 받은 것은 제중원, 세브란스병원 106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러므로 교수들과 직원들의 바라보는 눈길이 다르다는 점을 느꼈다. 병원 운영을 하는데 진료와 아울러 환자를 성의껏 보살피고 환자와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터이므로 평소에 개선키로 마음먹은 것을 하나씩 실천했다.

 

진료 물품 배송 효율화

의대 뒤쪽에 주차장이 있어서 의약품이 의대 후문 공간에 배송됐다. 진료 과별로 여직원들이 끙끙대며 무거운 수액을 들거나 카트를 밀어 가지고 갔다. 이에 공급회사에 의뢰해 병원 약국, 외래 입구, 수술실 입구 등 세 곳에 배송을 하도록 바꿨다. 그리고 물품관리과 직원이 카트에 수액을 싣고 각 부서에 배달했다.

매일 아침에 병동간호과 조무원이 환자용 수건을 타러 물품관리과에 가는데, 물품담당과 직원이 카트에 싣고 병동별로 배달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여직원들의 할 일이 크게 줄었다.

외래환자 전산 접수

부원장이 되기 전인 1986년 즈음해 필자가 외래접수부에 전산화를 하도록 건의해 전산접수를 하였다. 당시 외래접수부에서 환자 의무기록 자료를 진료과별로 전달하면 과별로 여직원들이 의무기록과에 가서 의무기록을 받아왔다. 이에 외래접수부에서 의무기록과에 전산으로 전달하고, 의무기록과에서 기록을 찾아 의무기록과 직원이 외래 진료과별로 전달하도록 했다.

위의 두 가지 제도 변화에 따라서 직원들의 일거리가 대폭 줄어들었기에 이들을 인력이 부족한 부서에 재배치했다. 의무기록과에 3명을 추가로 배치해 내과, 외과, 기타 진료부서들에 의무기록을 전달하게 했다.

약제과 약사 시간제 근무 도입

약제과 업무는 입원과 외래로 나뉘는데, 외래진료 시간은 보편적으로 오전 10시~오후 3시30분에 이뤄지므로 출근 후 10시30분 전까지는 업무가 별로 없고, 4시30분 이후에도 그랬다. 당시에 약사 채용에 어려움이 있었기에 약국을 개업약국과 계약해 운영하는 것을 제안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약사를 시간제로 나눠 채용하는 것을 제안해 실행했더니,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시간제근무 약사들이 좋아했고 꾸준히 효율적으로 운영되었다. 알약을 기계로 챙기는 자동정제카운터(Automatic Tablet Counter)를 제안해 도입했다.

의무기록 컴퓨터 복사 제도화

의무기록을 보존해야 하므로 보관 분량이 많다. 이에 종이 의무기록을 컴퓨터로 복사해 보존하도록 제도화했다. 진료과 별로 외래와 입원 환자의 10대 진단 명을 분석해 책자(진료통계 추세 분석)를 발행했다. 진료과 별로 흔한 10대 진단이 90% 이상이었다. 이 자료는 신규 직원 교육 뿐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 교육훈련에 적극 활용하게 됐다.

병원 최초 어린이집 개설

보직을 맡은 지 며칠 되지 않아 간호사 4명을 포함해 여직원 6명의 사직서를 받았다. 취업 대기자가 많으니까 병원장 결재를 받을까 하다가 경력이 3~5년인 직원들이기에 퇴직 사유를 확인했다.

어린이 돌보미가 갑자기 그만 두기로 해서 사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비용을 부담할 테니 돌보미를 구할 때까지만 병원에서 돌봐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이에 병원장에게 제안해 어린이집을 만들도록 했다. 병원 근처 부동산에 문의했더니 3개월 뒤 가능하다고 했는데, 마침 간호대학 2층에 2~3개월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어린이집을 만들었다. 이후 꾸준히 활용되고 있고, 지금은 연세대 동문 쪽에 큰 어린이돌보미 시설이 있다.

입원환자 식사 메뉴 다양화

입원환자 식사 메뉴가 병원 전체에 똑같이 한 가지였다. 식사 메뉴를 2~3개로 늘려 환자가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운영 상 가능한 지를 상의했다. 비용이 더 들지도 않고 운영에도 문제가 없다고 했였다. 이에 식사 메뉴를 환자들에게 미리 알려서 선택하도록 했더니, 환자들이 무척 좋아했다.

의공학과 협력을 통한 기기 고장 수리

병동마다 가습기, 선풍기가 고장이 나면 의공학과에 수리를 의뢰하므로 고치려면 시간이 걸렸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가습기와 선풍기 3대를 추가로 구입해 고장난 기기를 가지고 오면 새것을 빌려 주었더니 매우 효과적이었다. 응급실 입구에 심전도 장비 등이 있었는데, 자주 고장이 났다. 주로 코드 연결이 문제였졌다. 담당 수련의가 발로 코드를 잡아당기는 것이 흔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의공학과에서 격일로 응급실을 방문해 점검하고, 필요하면 현장에서 수리하도록 했다.

수간호사 승진제도 개선

수간호사 승진제도에 개선할 점이 눈에 띄었다. 승진 시험을 치른다고 하지만 형식적이었다. 이에 근무 기간으로 승진 대상자의 2배를 선정했고, 필기시험에 의료법과 의료원 규정을 넣어 풀게 했다. 면접시험 위원 중 간호부 간부는 당일 결정했다. 그 때까지는 연세대 간호학과 출신만 수간호사가 됐는데, 시험 시스템을 바꾸니 변화가 생겼다.

 

출처: 코메디닷컴(https://kormedi.com/1659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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