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효도할게요. 간호사님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

아직도 병동 간호사 생활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환자가 있다. 그 환자는 부모님과 연을 끊고 홀로 나와 생활하던 30대 남자였다.

술을 매일 마시던 그는 거동도 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망가져 병원에 오게 됐고, 접촉주의 환자로 보호자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렇게 몇 년간 연을 끊고 지낸 부모님이 병원으로 오시게 됐다.

입원 기간 도중 환자와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아 항상 큰소리가 나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간병을 못하겠다며 집에 돌아가시곤 했다.

당시 간호사들은 1명 당 환자 16-22명을 담당해야 했고, 1인실 접촉주의 환자 특성상 자주 들여다보지 못하는 상황으로 보호자의 상주가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때문에 간호사들은 환자가 부모님과 싸울 때마다 중재점을 찾아 부모님과의 관계를 완화해 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가 부모님과 싸운 후 홀로 남겨진 밤이었다. 어느 때보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았고, 혈압과 혈당 산소포화도 수치 모두 흔들리는 상황으로 언제든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한 상태였다.

당시 나이트 근무였던 필자는 15분마다 환자의 상태를 살폈고, 혈당 수치도 수시로 체크하고 있었다. 새벽 2시쯤 환자는 극심한 오한을 느끼며 떨고 있었고, 저혈당과 고열 증세가 있어 곧바로 조치했다.

그렇게 수시로 병실을 드나들 때 환자는 필자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간호사님 제발 살려주세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부모님께 효도할게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라며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때 나는 부모님께 함부로 대하는 환자가 답답했고 항상 싸우고 나서 간호사들한테만 잘못했다고 하는 환자가 얄미웠었다.

그렇게 어느 날처럼 하는 소리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걱정 말라며, 지금 포도당이랑 해열제 들어갔으니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그날 아침 환자의 산소포화도 수치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고, 산소를 증량한 채로 다음 근무 간호사에게 인계 후 퇴근했다.

그날도 나이트 근무였던 필자는 그 환자가 임종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굳을 수밖에 없었고 한마디만 계속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한테 살려달라고 했었는데…."

만약 내가 좀 더 주의 깊게 봤었더라면, 만약 내가 놓친 증상이 있는 건 아니었을지, 만약 환자가 했던 말을 진심 어리게 들었더라면 환자는 죽지 않지 않았을까라는 죄책감에 휩싸이게 됐다.

익숙함에 속아 중요한 것을 잃어 버린 기분이었다.

필자는 이 분을 계기로 간호사들이 마음 간호를 실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바쁜 일과 속에 끼니는 물론 화장실 한번 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간호법이 제정돼 이러한 간호사들의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마음 간호를 실천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김민정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감염관리실 간호사

출처 : 대전일보(https://www.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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