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가천대 메디컬캠퍼스에서 열린 ‘제76회 가천대학교 나이팅게일 선서식’에서 간호학과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앞두고 전문간호인으로의 다짐을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간호대 입학정원이 ‘또’ 늘어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3월 교육부는 내년 간호학과 입학정원 700명을 증원한다고 발표했다. 사실 이는 놀랄만한 사실도 아니다. 2019학년도부터 전국 간호대 입학정원을 매년 700명씩 증원해왔기 때문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내 심경을 이보다 잘 드러낼 속담은 없을 것이다. 간호학과 학생으로서 나는 이 상황이 몹시 개탄스럽고 화가 날 뿐이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국내 간호사 면허자 가운데 52.6%만이 의료 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회원국의 면허 간호사 가운데 의료 기관에서 근무하는 임상간호사의 평균 비율인 약 70%와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수치다. 그뿐만 아니라 임상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가 다른 회원국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간호인력이 부족해지면서 간호사의 근무환경이 악화하고, 이를 버티지 못해 임상을 떠나는 간호사가 더 증가하는 악순환이 반복하는 것이다. 간호대 입학정원을 늘리는 것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데 정말 도움이 될까? 글쎄다. 그저 밑 빠진 독의 구멍을 더 키우는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과연 간호인력 부족의 원인이 간호대 졸업생들이 적어서일까?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간호대 졸업생 수는 인구 10만명당 100명으로 오이시디 2위지만, 임상 간호사 수는 1000명당 6.9명에 불과해 21위로 뚝 떨어진다. 간호협회의 ‘병원 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전체 간호사의 52%를 5년 미만 경력자가 차지하고 있다. 신규 간호사가 1년 안에 사직하는 비율은 2014년 28.7%에서 2018년 42.7%, 2020년 47.4%, 2021년 53%로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사직하는 이유 1위는 업무 부적응(32.6%)이었다. 간호인력 부족 문제의 핵심이 간호학과 정원 부족이 아니라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조건과 노동강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한 간호사가 쓴 글을 보면, 새벽에 응급 환자가 생기면 당직의가 없기 때문에 간호사가 의사 대신 수습해야 하며 간호사가 의사 대신 오더(지시)를 내는 상황이 많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병원 내 약국이 운영하지 않는 주말에 처방이 나면 간호사가 약사의 일을 대신해야 한다고 했다. 이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지만 놀랍게도 많은 병원에서 행해지고 있다. 만약 이로 인해 의료 사고나 투약 사고가 나면 모두 간호사가 책임을 져야 하고 간호사를 보호해 줄 방어책은 전혀 없다.

불규칙한 3교대 근무와 태움 문화 또한 근무 환경 저하의 주원인이다.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 사이에서 직급 등의 서열에 따라 행해지는 악폐습인 태움은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생긴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태움의 근본 원인이 지나치게 짧은 교육 기간과 체계적이지 못한 교육에 따른 부작용이기 때문이다. 3교대 근무의 불규칙한 패턴으로 인해 많은 간호사가 수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건강도 나빠져서 삶의 질이 낮은 상황에서 신입 간호사의 교육조차 선배 간호사가 직접 해야 한다. 이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신입 간호사는 병원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며 실수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수많은 업무를 책임져야 하고 예민해져 있는 선배 간호사는 매번 실수하는 신규 간호사가 부담스럽고 짜증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태움 문화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기관에 신규 간호사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전담간호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해 신입간호사가 체계적인 교육을 받도록 하면 어떨까. 또한 3교대 근무가 아닌, 간호사가 근무제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근무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뒤 간호학과라고 이야기하면 열에 여덟아홉의 사람들은 “왜 그렇게 힘든 과를 선택했냐”며 안타까움을 표현해 속상할 때가 많았다. 아마도 사람들 대부분이 간호사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어서 나를 걱정해주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간호인력 부족으로 인한 의료 공백에 대한 해결책이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이라는 걸 이미 모두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간호 인력 증원을 위한 간호대 입학 정원 증가’라는 정부의 해결책이 무용지물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닌, 빠진 밑을 메꾸고 독 안에 있는 물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다.

 

 

출처: 한겨레(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1199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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