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 오는 환자 중 '응급실인데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냐'고 화를 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응급실의 모습이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의료진은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근 사진집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를 펴낸 이강용 작가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병원에서 가장 '보이지 않는' 공간인 응급실 소생실의 모습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제목의 '레벨 원(Level 1)'은 응급 중증도 분류체계 5단계 중 가장 위급한 상황이다. 심정지나 중증 외상 등 즉각적인 처치가 필요한 환자가 도착한 상태를 뜻한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은 응급실 내부의 소생실로 옮겨진다. 의료진의 전쟁은 이때부터 시작한다.

이 작가는 7년째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일해 온 간호사다. 그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에 경상북도 문경 생활치료센터로 파견 갔다. 처음 보는 감염병의 등장은 당황스러웠다. 그는 "당시 7~8명의 의료진이 있던 응급실에 120명의 확진자가 한꺼번에 몰아쳤다"며 "병상이 모자라서 의자나 바닥에서 조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감염병의 불길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사회 곳곳에선 방역 수칙을 어기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 작가는 "응급실 안에선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리려고 씨름하는데, 사회의 경각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며 카메라를 들었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같은 해 '코로나19 스토리'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그동안 찍었던 응급실의 모습이 알려지며 '사진 찍는 간호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책은 코로나19 환자뿐만 아니라 응급실을 찾은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한다. 이 작가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로 공장에서 감전돼 심정지로 실려 온 환자를 꼽았다. 신발의 고무 밑창이 새까맣게 탈 정도로 강한 전류에 노출된 상태였다.

간신히 살아난 환자가 꺼낸 첫마디는 '언제부터 다시 일을 할 수 있냐'였다고 한다. 이 작가는 "사고를 당해서 오는 환자는 주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들"이라며 "자신의 건강보다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환자들을 보며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소생실 한 켠에 덩그러니 놓인 신발 한 짝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다. '응급조치를 미루고 사진을 찍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비번 시간을 활용해 기록을 남겼다. 환자와 의료진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도 문제였다. 자극적인 수술 장면이나 얼굴 노출을 피해야 했다.

그는 응급조치하며 퉁퉁 불은 의료진의 손과 땀이 흥건한 뒷모습,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을 위주로 촬영했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을 '손' '등' '눈' 등의 주제로 묶어 책의 각 장을 구성했다.

'사진 없음'이란 제목의 제4장이 눈길을 끈다. 사진집인데 사진이 없다. 차마 카메라를 들지 못했던 순간들이다. 이 작가는 "응급실에서 희망차거나 즐거운 장면은 많지 않다"며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을 물어야 했던 순간 등 고통스러웠던 이야기를 모았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다음 달 출국을 앞두고 있다. 간호사로서의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는 "외국에서 공부하며 '항공 간호사' 분야에 도전할 계획"이라며 "새로운 환경에서 들고 올 다른 사진들도 기대해달라"고 했다.
 

 

출처: 한경신문(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304119018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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