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병원 주사실에 걸린 이미지 ⓒ 이혁진

어제 한 서울 대학 병원 암병원 주사실, 70대 중반의 한 환자가 휠체어에 의지한 채 항암주사를 맞고 있었다. 그 옆에서 나도 항암 주사를 꽂고 있었다.

그 환자는 주사실에 처음 왔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뭇 두려워하는 눈치다. 그는 항암주사를 정맥에 꽂고 리클라이너에 자리할 때까지도 안절부절못해 보였다.

이후 그는 간호사에게 주사는 언제까지 맞으며, 과연 효과는 있는지 이런저런 질문을 계속했다. 사실 나도 처음 항암주사를 맞기 시작할 때 귀찮을 정도로 물었던 내용이다.

간호사는 그가 묻는 것에 일일이 답하면서 당일 주사 후 물을 평소보다 많이 먹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물은 항암제 독소를 몸에서 배출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조금 후 그 환자는 또 "아줌마! 주사 맞는 시간 30분이 다 됐다 "며 서둘러 주사기를 빼달라고 재촉했다. 이에 간호사는 "네에~" "식염수는 조금 더 맞아야 하니 잠깐 기다려주세요 "라고 답했다.

항암주사는 보통 식염수를 함께 맞는데 항암주사액과 달리 식염수는 조금 늦게 주입돼 시간이 더 걸린다.

이런 원리를 모르는 그 환자가 채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간호사들은 그의 계속되는 질문과 궁금증에 인내심을 갖고 친절하게 답변했다.

그런데 그는 간호사를 '아줌마'라 불렀다. 말할 때마다 거듭되는 아줌마 호칭은 듣기에 거북했다. 간호사들도 특별히 내색하지 않았지만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 환자는 유감스럽지만 '간호사 호칭'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한 적이 없어 보였다.

그가 주사를 다 맞고 병실을 나서며 "아줌마, 고마워요"라고 말할 때는 간호사들이 답하지 않았다. 바쁘기도 했지만, 별다른 답변은 없었다. 갑자기 냉기만이 돌 뿐이었다.

하지만 병실에서 계속해 주사를 맞고 있던 다른 환자들은 그가 나가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성토하기 시작했다.

"간호사를 아줌마가 뭐야?"
"그 양반 참으로 고약하네!"
"간호사님? 기분 나쁘셨겠네요!"
"나 같으면 한마디 했을 것 같은데?"

등등 간호사를 옹호하는 발언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여기에 답하는 간호사들 답변이 걸작이다.

"그분이, 제가 결혼한 것을 어떻게 아시고 아줌마라고 하시네요."
"그렇더라도 차라리 아가씨라 불렀으면 더 좋았을 걸요."
"하긴, 무턱대고 하대하는 분도 있는데 뭘요? "

자신보다 환자를 생각하며 에둘러 말하는 간호사들의 재치가 빛나는 순간이다. 호칭에는 마치 달관한 것 같았다. 이 같은 간호사 말에 주사실은 긴장된 분위기는 풀어졌고, 어느 순간 웃음 띤 따뜻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  항암주사 장면 ⓒ 이혁진

직업인 간호사는 '선생님'으로 호칭하는 것이 병원에티켓  

암병원 주사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안타까운 암환자를 누구보다 잘 아는 최일선 의료진으로 환자를 돌보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환자들이 이들 간호사들을 조금은 더 배려해야 하는 이유이다.  

보통 나는 직업 간호사와 의사를 포함해 의료진을 통칭 '선생님'으로 부르고 있다. 병원 브로셔에 나와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병원에 자주 들르다 보니 언젠가 의료진 호칭에 대한 팁도 전해 들었다. 간호사가 주치의를 칭할 때 교수님이라 부르는데, 진료 중 환자도 의사를 '교수님' 직함으로 호칭하면 무난하다는 것이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환자와 의료진 간의 호칭은 존경과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실제 병원 측에서도 환자를 부를 때 직설적으로 환자라 하지 않고 '고객' 또는 '님'으로 호칭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환자도 의료진을 부를 때 '선생님' 또는 '교수님'으로 예우해 부르면 좋을 듯싶다.

어쨌든 '아줌마 간호사' 표현 때문에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병실에서 환자들이 오랜만에 웃었다. 암병동에서 한바탕 웃음이라니 좀체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한편 전공의 사직과 파업으로 인해 이 병원은 이날 한산한 편이었다. 하지만 암병원 주사실은 다른 병실에 비해 환자와 보호자들로 붐비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암환자에 대한 외래 진료와 항암치료는 원활하게 진행됐다.

암병원 주사실에서 만난 한 암환자는 "전공의 파업에도 치료일정에 따라 그나마 항암주사를 맞을 수 있어 다행"이라 말했다.

▲  포장마차 호떡 ⓒ 이혁진

병원을 나와 허한 배를 달래려고 잠시 지하철 역 호떡 포장마차를 들렀다.

포장마차집 사장이 말하길 "전공의 파업 때문에 포장마차를 오가는 환자손님이 3분의 1은 줄었다"라고 한다. 이번 사안으로 인해 고통받는 건 환자와 보호자뿐만 아니다. 병원을 바라보고 장사하는 인근 상인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출처: 오마이뉴스(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06172&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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