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안녕하세요 선생님^^인터뷰를 수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재활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5년 차 간호사 고성훈입니다. 이전에는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2년 6개월, 마찬가지로 종합병원 COVID 중환자실에서 1년 근무하였습니다.

 

Q2. 처음 간호사를 직업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셨나요? 신규간호사로 입사한 첫날이 혹시 기억나시는지,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고등학교 때 입시설명회에서 간호학과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남자가 무슨 간호사야.’란 생각이었지만 입시설명회를 듣고 관심이 생겨 간호학과에 대하여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 저를 사로잡은 것은 환자와 간호사 간의 관계가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청년도, 노인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범죄자마저도 모두 병원에 오면 간호사의 돌봄이 필요하단 것과 그 무조건적인 돌봄을 행하는 간호사의 마음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또 제가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평생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간호사는 넓디넓은 간호의 영역만큼 할 수 있는 일도, 공부도 무궁무진하단 것도 맘에 들었습니다.

 

Q3. 입사하실 때 중환자실을 지망하셨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입사할 때 중환자실을 지원하였습니다. 중환자실을 선택한 이유는 제가 그곳에서 가장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병동에 비해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을 집중적으로 간호하는 제 모습이 쉽게 상상되고 또 멋있었습니다.
 또 환자들을 간호사라는 직업을 오랫동안, 혹은 평생을 하게 된다면, 간호에 대해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이길 원했습니다. 특히 제가 지원했던 병원은 내과와 외과가 통합된 중환자실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케이스들을 볼 수 있겠다는 이유도 제 선택을 뒷받침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후에 다른 일, 다른 병원, 다른 부서에서 가게 되더라도 자신감이 되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중환자실에 신규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놀랐던 것은 환자에게 적용된 여러 가지 종류의 기계에서 나오는 알람 소리가 크고 정신없이 들렸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아서 퇴근한 이후에도 종종 환청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또 생각했던 것과 달리 중환자실도 환자는 물론 보호자의 감정에 대한 꾸준한 간호도 중요합니다. 처음 환자 함께 보호자가 중환자실에 왔을 때뿐만 아니라 이후 면회 시간에도 보호자의 감정을 간호해 줄 수 있는 간호사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중환자실에 장점이라고 하면 환자의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순간을 가장 가까이서 함께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에 이끌려가는 환자들의 곁에서, 나는 간호사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제 선배들도 그랬고, 제 후배들도 그럴 것입니다. 각자 해답은 모두 다르겠지만 그 답을 내리는 순간이 진정한 간호사가 되는 소중한 순간이라 생각합니다.

 

Q4. 신규간호사 시절 가장 적응하는 데 오래 걸렸던 것은 무엇인가요? 또한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시간이 항상 부족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왜 뛰지 않아도, 밥과 커피를 마시면서도 일을 다 마칠 수 있는지 너무너무 궁금했던 신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선배님들이 일을 적게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요. 당연하게도 제가 다른 사람보다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져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제 업무수행 능력을 끌어올려야 했습니다. 매일 퇴근 후에 병원 앞 카페에서 질병과 약, 각종 검사와 환자에게 적용되는 기계들을 공부하였습니다. 또 제가 중점을 둔 것은 ‘시뮬레이션’이었습니다. 혼자 상상하면서 입원환자의 보호자 설명도 해보고, 루틴 업무들도 해보고, CPR 상황도 상상하며 움직였습니다. 이런 반복된 훈련이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정확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줬습니다. 결국 매일 밥은커녕 물도 제대로 못 마시던 제가 다른 신규 선생님들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의 수준까지 빠르게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Q5. 중환자실과 재활병동을 거쳐 코로나 중환자실에서 근무하셨었는데요. 여러 부서에서 근무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세요.

겨울이라기엔 너무 따뜻한 날이었어요. 편한 맨투맨에 좋아하는 향수도 뿌리고, 볼품없이 자란 머리를 자르고 예쁘게 파마도 했죠. 출근 전 햇살 좋은 카페테라스에 앉아서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읽었어요. 출근하니 다른 간호사 선생님들이 머리 예쁘게 되었다고 칭찬도 해주어서 마스크를 썼음에도 올라가는 광대는 숨길 수 없더군요. 그리고 인수인계, 환자가 돌아가셨다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젊은 여자 환자였습니다.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예쁘게 웃던, 머리를 밀고 나서 어떤 모자가 어울릴 것 같냐며 휴대폰을 내밀던, 엉덩이 주사는 부끄러우니 팔에 주사를 놓아달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갔었습니다. 단단한 마음이 멋있어 보여서, 어른 같아서, 또 아이 같아서. 그녀의 죽음에 저는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간호사가 되고 처음으로 담당 환자가 세상을 떠난 날, 힘들어 정신을 못 차리는 나를 보고 프리셉터 선생님이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 힘들어하고 마음에 담아둬도 상관없다. 하지만 네가 힘들어하는 동안에도 다른 환자는 너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너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만둘 것이 아니면."
 저는 아직도 미숙한 간호사인 것 같습니다. 아직 치우지 못한 환자의 짐에서 그녀를 떠올리곤 머릿속이 멍해지더라고요. 하나도 안 어울리는 보라색 비니를 쓰곤 환하게 웃는 그녀의 생각에 금방 우울해져, 그날 진한 커피를 몇 잔이고 마셨습니다.

 

Q6. 아마 웨이팅을 하고있는 선생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부서 중 하나가 중환자실일 텐데요. 중환자실을 희망하는 선생님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요?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를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간호사는 그 아픈 사람을 돌봐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간호사는 전문직이라는 생각에 고상하게 일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힘들게, 치열하게, 좀 더 많이 환자에게 간다면, 그만큼 환자는 좋아진다고 믿습니다. 더러워진 손은 씻으면 됩니다. 환자는 일거리가 아닙니다. 간호사의 희생이 부당하다는 것은 국회에서나 병원 임원들의 회의, 혹은 술자리에서나 이야기하는 것이지, 병실에서는 당연하다 생각해야 합니다. 간호사의 업무에 우선순위는 항상 환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호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결국 자기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을 더 위하는 마음은 간호사에겐 생명을 살리는 가장 좋은 무기가 됩니다.

 

Q7. 지금은 병원에서 근무하지 않고 계신다고 하셨는데요. 어떠한 일들을 하면서 일상을 보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올해엔 제 이름으로 책을 내보려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간호사로서 남들이 접해보기 쉽지 않은 경험들과 그것을 겪고 든 나의 생각들이 빠르게 휘발되어 버리는 게 아쉬워서 인스타를 통해 글을 쓰다가 나의 글들을 모아 책을 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글들이 현직에 계신 다른 간호사분들에게는 공감과 위로가 될 수 있게, 또 간호사가 되고 싶어 하는 다른 간호사들에게는 용기가 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Q8. 다시 임상에서 일을 하실 때 경험해보고 싶은 부서가 있으신지와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일을 만들지 않고선 좀이 쑤셔 못 견디는 성격이라 올해에는 소방관 구급대원이 되어보려 합니다. 젊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거리에서 쓰러진 아저씨를 구한 적이 있습니다. 저혈당 쇼크가 와서 할 수 있는 응급처치를 하고 119에 신고했습니다. 구급대원이 도착한 후에 필요한 추가 처치들을 진행하고 환자가 의식을 차렸을 때, 나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구급대원이 되고 싶단 생각을 했습니다. 또 이번 이태원 참사 때에 나이트 근무를 하면서 현장 상황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받는 데 그렇게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간호사로서, 또 미래의 소방관으로서 좀 더 환자와 가까이 있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중입니다. 

 

Q9. 선생님의 앞으로 계획이나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 무엇인가요? 

 내년에는 한 사람의 간호사로, 또 한 사람의 소방관으로서 동료들과 환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또 나의 책을 내고, 그 책을 발판 삼아 다작하는 작가가 되었으면 합니다. 언젠가 늙어서 자식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할 때, 내가 가장 잘한 것은 아픈 사람들을 간호하며 살겠다고 선택한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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