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널스>는 창간특집으로 우리나라 간호의 현실과 문제점을 진단하고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간호인력 정책에 대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 본다.

① 간호인력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②간호교육 이제는 바꿔야 한다

③간호인력 이제는 상생협력의 길로

KBS뉴스 화면 캡쳐
KBS뉴스 화면 캡쳐

 

“간호사들은 밥을 ‘마신다’고 한다. 밥을 먹는 속도가 대체로 5분을 넘질 않는다. 화장실은 출근 전, 퇴근 후에만 간다.”(서울 S대학병원 5년차 ㄱ간호사)

“1년차 미만 신규 간호사가 중환자실 간호인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농담으로 ‘환자가 셀프치료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할 정도다.”(서울 A대형병원 3년차 ㅅ간호사)

“생계형 간호사인 나는 어쩔 수 없이 남아 있지만 낮은 연차의 후배 간호사에게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라고 말한다. 사직서를 내는 게 간호사들의 희망이 된 상황이다.”(서울 K대학병원 20년차 ㄱ간호사)

간호사가 의료현장을 떠나고 있다. 병원간호사회가 매년 발표하고 있는 ‘병원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간호사 평균 근무년수는 1년 이상에서 3년 미만이 22.3%로 가장 많다. 그럼에도 신규간호사의 이직률은 2014년 28.7%, 2015년 35.4%, 2016년 35.3%, 2017년 38.2%, 2018년 42.7%로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제임스 뷰캔(James Buchan) 영국 퀸마가렛대 교수는 “간호사의 높은 이직율은 환자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한다”고 말한다. 그는 “간호사에게 주어진 고강도 업무량과 열악한 근무환경은 의료사고 가능성을 높이므로 간호사의 이직을 줄이는 조치가 우선돼야 한다”고 충고한다. 실제로 잉글랜드와 북아일랜드, 스코트랜드, 웨일즈 등 영국 연방에서는 간호사 배치 기준 강하를 위해 법률이 제정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은 간호사 1명이 평균 16.3명, 병원은 43.6명의 환자를 맡고 있다. 이는 미국(5.7명), 스웨덴(5.4명), 노르웨이(3.7명)과 비교해 적게는 3배 많게는 11배나 된다. 연봉이 2500만원이 안 되는 병원이 수두룩하고 3교대 등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그걸 감내할 사람이 적다. 열악한 근무 환경과 처우가 간호사를 병원 밖으로 내모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우리나라 의료법에 간호사에 대한 배치기준을 두고 있지만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으로 전락했다. 이와 관련 배성희 이화여대 간호대학 교수는 “간호사 1명 대비 과도한 환자 수는 간호사에게 장시간 근무나 초과근무, 높은 업무강도, 충분하지 않은 휴게시간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결국 병원을 떠나게 함으로써 인력수급 불균형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간호사 배치기준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호인력 확보수준이 환자안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확인되면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999년에 간호사의 최소배치기준을 법으로 정했다. 이 법에서 제시하는 기준은 책임간호사와 수간호사를 포함하지 않는 최소인력이다. 2005년 1월에 캘리포니아주의 간호사 최소배치기준은 내외과계의 경우 1대 5대, 최고배치 기준은 1대1(외상센터)에서 1대8(신생아실)로 제시했다. 간호사 배치기준이 유명무실한 우리나라의 경우 간호사의 평균나이와 근무년수가 각각 28.7세와 6.2년이다. 반면 미국은 간호사의 평균나이와 근무년수가 각각 46.7세와 18.1년으로 크게 높다. 결국 경력간호사 부족으로 인해 우리나라 환자만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 2018년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고용정책의 일환으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간호인력 근무여건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연구책임자 이상영 보사연 선임연구위원)를 실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간호인력 배치수준은 환자의 건강결과에 영향을 미치며, 환자안전은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수와 비례했다. 숙련된 간호사 배치수준이 높으면 낙상, 감염, 투약오류, 사망 등의 부정적인 환자결과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간호사 1인당 환자수가 증가할수록 병원 내 사망률은 증가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건강결과와 정책연구센터’에서 간호사 배치수준이 환자결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국가 간 비교를 위해 세계 30개국에서 동일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린다 에이큰(Linda H. Aiken) 교수도 “한국의 간호사 배치수준은 국제 수준에 비해 열악한데 이는 간호사들이 병원에서 계속 일하지 않고 떠나는 이유가 된다”며 “경험이 풍부한 숙련된 간호사들을 충분히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간호사는 병원에서 의사와 함께 가장 중요한 인력이다. 그러나 의사의 경우 활동인원 비중이 90%인 것과 달리는 간호사는 그 절반도 안 된다. 정부는 지금까지 간호학과 정원을 늘리고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확대해 부족한 인력을 메우겠다는 구상을 진행해 왔지만, 현장을 떠나는 인력을 붙잡지 못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러는 사이 많은 중소병원들이 간호사 근무여건은 개선하지 않고 의료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시장논리를 앞세워 간호사가 없다며 간호조무사를 채용하고 있다. 간호사 배치 비율에 따라 입원료를 10∼50%, 가산하는 제도인 간호등급 가산제를 신청하지 않는 병원도 73%에 달한다. 이로 인해 선진 외국과는 다른 간호인력 배치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캐나다, 호주의 경우 간호사 대 간호보조인력의 비율이 대체적으로 3:1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일부 중소병원들의 경우 간호보조인력이 간호사 보다 많은 게 우리나라 병원이 처한 현주소다.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다. 하지만 처벌을 받은 의료기관은 단 한곳도 없다. 린다 에이큰 교수는 이에 대해 “간호사를 충원하는 대신 보조인력을 더 투입한 경우 간호사의 만족도도 좋아지지 않았고, 환자결과도 나빠졌다”고 조언한다.

결국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간호인력 정책을 챙길 때가 됐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간호사 1명 당 환자 수에 대한 기준을 확실히 정하고,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병원은 감액이 아니라 수가를 지급하지 않는 식으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간호사들이 병원을 왜 떠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는 신규로 들어온 인력과 다시 데려온 인력 모두 얼마 안 있어 다시 떠나는 일이 반복될 것이라며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속적인 정책을 펼쳐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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