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의 신분으로 병원에 있다 보면 선배 간호사들의 기에 눌려서 목소리를 크게 내기도 힘들다. 다행히 아는 질문을 해서 대답하려고 하면 선배의 매서운 눈초리에 숨이 턱 막히면서 목소리는 자꾸만 안으로 기어들어 가게 된다. 몰라도 좀 당당하게 대답하면 좋으련만, 겪어 본 사람들만 아는 이 심정. 자꾸 웅얼거리고 목소리는 작아져만 가는 바람에 다시 혼나는 일이 반복된다. 자신 있게 대답하기에는 공기의 흐름이 상당히 무겁다. 그리고 잘못 이해하거나 모르는 부분을 어설프게 대답했다가는 선배 간호사의 무서운 호통을 듣게 될 수도 있다.

신규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어느 정도의 시기까지는 일단 ‘모르는 게 약’이다. 그래서 신규간호사는 알아도 모른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대답하는 목소리의 톤이나 소리의 크기에 따라 선배 간호사의 공격적인 질문이 계속된다는 것. 또박또박 대답을 했으면 그냥 넘어가도 되는 일인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때문에 선배 간호사의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문제가 커진다.

“뭐라고? 다시 말해 봐. 지금 이 환자 수술명 다시 말해 보라고!”

소리를 질러 대는 선배 간호사 앞에서 공기도 얼고 신규도 얼어붙는다. 머릿속이 엉켜 버리면서 신규간호사의 입은 바늘로 촘촘히 꿰매둔 것처럼 도대체 떨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면 돌아오는 말은 다음과 같다.

“너 벙어리야? 왜 말을 못 해?”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어 버린 신규간호사. 심호흡을 하고 용기를 내어 아는 대로 답을 해 보자. 그리고도 틀렸다면?

“제가 다시 확실하게 공부해 오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메모해두자. 알아 오겠다고 하고 다시 그대로 가 버리면…, 그 이후는 상상에 맡기겠다.

간호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행동이 저절로 빨라지게 된다. 대답이 빨리 안 나오면 분노 게이지는 계속 상승하게 되니 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고 또박또박 말해야 한다. 힘들어도 연습해라. 모르니까 배 째라 식의 대답이 아니라면 일단 대답부터 명확하게 해두는 것이 선배 간호사의 진노를 조금은 멈추게 할 것이다.

3학년이 되어서 병원으로 첫 실습을 나가는 학생들에게도 이 이야기는 반드시 해 준다. 학생이어서 모르는 것이 많을 수 있고, 그건 죄가 아니다. 다만 같은 질문을 다음에 다시 했는데도 여전히 모른다고 말하면 그건 간호사가 알아 오라고 한 것을 무시한 것처럼 돼 버리기도 하고, 노력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는 간호 학생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공부해 오라고 한 것은 다시 질문하든 하지 않든 반드시 공부해두어야 한다. 실습지에 나가서 받게 되는 질문들은 실제 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질문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어떤 질문을 받게 되면 그에 대한 답을 찾겠다는 생각을 반드시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정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대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웅얼웅얼, 우물쭈물하지 말고 틀린 답이라도 자신의 생각이 이렇다고 명확히 대답해라. 혹시 질문한 간호사 선생님이 “뭐라고? 다시 대답해 봐.”라고 되물으면 절대 당황하지 말고 차분한 어조로 또박또박 대답해라. 그러면 간호 학생이니까 귀엽게 봐줄 수도 있다. 만약에 틀린 답인데 학생이 당당한 태도로 침착하게 질문에 답을 하면 순간 질문한 간호사가 헷갈릴 수도 있다. “어라, 틀린 답 같은데 굉장히 당당하게 말하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뒷감당이 안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잘못 걸리면 몇 배로 혼이 날 수 있다. 이런 복불복의 상황까지는 모두 짐작할 수 없으나 기본 자세는 갖추도록 하자.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말씀에 꼬박꼬박 대답을 하면 말대답하는 아이로 찍히는 한국의 문화 정서상 갓 입사한 신규가 아는 척하면서 이것저것 대답하는 것이 썩 이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성 있는 대답과 일관성 있는 태도는 언젠가 통하게 되어 있으니 꾸준하게 대답하는 노력을 하길 바란다.

더러는 대답을 잘해도 말투나 자세 때문에 미운털이 박히는 경우도 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키가 큰 편이어서 버스를 타면 나보다 키가 작은 남학생들이 많았다. 그렇게 튀는 것이 너무나도 싫어서 조금이라도 작게 보이려고 짝다리를 짚던 것이 버릇이 되어서 나도 모르게 삐딱하게 선 자세로 대답하는 일이 생기곤 했다. 선배 간호사들이 나의 태도에 처음에 많이 당황해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리고 대답할 때 “예썰(Yes, sir).”이라고 장난치던 버릇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5년 차 선생님의 지시에 “예썰.”이라고 대답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선배 간호사분이 껄껄 웃으면서 “너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예썰이라고 한 거야? 얘 굉장히 웃기네.” 하면서 - 천만다행히도 - 그냥 넘어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로 나의 행동이 다른 선생님들에게 계속 회자되어 나는 짝다리를 짚고 서 있는 태도와 말투를 고치는 데 신경을 바짝 썼던 기억이 있다.

버릇 없게 말하는 것보다 그냥 벙어리로 혼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계속 말을 안 하고 대답을 안 하게 되면 이것은 자신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명심하고, 어렵지만 입을 떼는 연습을 해 보자.(『널스브랜딩』 중에서)
 
 
 

 

저자 김명애
발행 포널스출판사
302쪽
판형 148*210
가격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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