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대 학생으로 살아가면서 나만큼 국내와 국외를 넘나드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당시 나는 많은 훈련과 새로운 영역으로의 경험을 시도했다.

공산권 선교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전략적으로 홍콩(중국에 반환되기 전 마지막 해에 방문함), 중국 등으로 가서 그 나라의 대학생들과 교류하였다. 또한, 국내에서는 의대, 약대, 간호대생들로 이루어진 의료선교 연합동아리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강원도 태백, 삼척, 전라도 정읍 등의 무의촌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혈압, 맥박 등을 측정해 주고 고혈압, 당뇨와 같은 질환의 예방법에 대한 교육을 해 주었고, 연로하여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서는 집집마다 방문하여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간단한 검사 등을 수행했다.

그때 내가 쌓은 경험들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호사는 다양한 대상자를 만나야 하는 직업이니만큼 자기 또래 외에도 다양한 연령의 대상자와도 부담 없이 만나 편안하고 신뢰 있는 관계를 맺을 줄 알아야 한다. 대학생 때부터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해 온 나로서는 이러한 것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대화를 나누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스스럼없이 물어보며 상대방의 기분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면서 정중하게 내가 원하는 것을 주장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씩 터득해 왔기 때문이다. 굳이 이런 방법을 배우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국내외 활동을 하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스스로 실행하며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는 사이 깨닫게 된 것이다.

특히 연합동아리에서 매년 여름 열렸던 여름 진료에서 나의 활약상은 실로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무의촌에 있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문학의 밤’을 주최하면서 전체 무대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전문 레크레이션 강사처럼 많은 사람 앞에서 사회를 보는 동시에 뮤지컬과 태권도 공연팀을 구성하여 연습시키고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우리가 열심히 준비한 무대를 관람해 줄 가장 중요한 고객인 청소년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았다. 무슨 일을 하든지 모객이 가장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몸소 깨달으며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마케팅을 익혔던 게 아닌가 싶다. ‘어떤 무대를 보여 주어야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모일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그들의 마음속에 새겨질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드디어 강원도 태백과 삼척, 그리고 전라도 정읍 등에서 성황리에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올 때의 기분이란…. 세상을 다 얻은 듯 의미 있고 감동적이었으며, 높은 성취감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내가 가진 내 안의 뜨거운 열정을 활활 불태울 수 있었기에 수고비는커녕 봉사점수가 없어도 매일 땀흘려 연습하고 준비했던 그 모든 과정이 그저 너무나 보람되고 행복했다. 내가 고민하고 고생하고 땀을 흘린 만큼 그 지역의 청소년들에게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최고의 축복이라는 큰 비밀을 알아 버린 것이다. 누군가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내가 아끼는 대상자를 위해 수고의 땀방울을 흘리는 것이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된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요즘처럼 바쁜 와중에도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학교 강단에 서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고, 방학 때마다 어려운 지역으로의 의료봉사를 기획하고 함께 나갈 사람들을 찾아 가치 있는 발걸음을 묵묵히 옮기는 것도 쉬지 않고 있다.

나는 간호 학생들에게 강력히 권하고 싶다. 만약 기획해야 할 기회를 얻게 된다면 주저하지 말고 무조건 해 보아라. 스스로 기획하고 일을 만들어 가면서 사람들을 이끌게 되고 성장하게 된다. 병원 취업을 위해 그저 우선은 공부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강박관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젊은 날의 열정 가득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스스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처음부터 전문가인 경우는 없다. 진정한 실패는 도전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학점과 영어점수보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할 수 있음을 결코 잊지 말기를….

나의 대학 생활의 또 다른 경험 중 하나는 특별한 아르바이트였다. 내가 했던 아르바이트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TV 보조출연자(엑스트라). 상황에 맞게 필요한 행동이나 제스처를 취하며 자연스럽게 길을 지나가거나 주인공들 뒤에서 왔다갔다하면 되는 아르바이트였다.

1998년 박신양과 김남주가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내 마음을 뺏어봐’에서는 의사로 나오는 박신양 씨의 외과수술 신(scene)에서 수술방 간호사로 고정되어 출연한 적도 있었다. 간호학과 학생이라고 하니 연출자가 특별히 나를 고정으로 넣어 주었던 것이다. 물론 마스크와 두건까지 하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간호사가 ‘나’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덕분에 촬영하면서 당시 유명배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도 했던 기분 좋은 추억의 한 장면으로 나의 뇌리에 남아 있다. “오, 간호학과 학생이면 여기 수술방 장면에 고정으로 출연하면 되겠네요.” 하면서 웃어 주던 박신양 씨의 눈빛이 선하다. 그분의 팬클럽은 아니었지만, 순간 심쿵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다행히 수술실 실습을 나갔다 온 뒤여서 무균적으로 의사에게 가운을 입혀주는 것과 오염시키지 않고 수술용 글러브를 손에 끼는 순서를 완벽히 마스터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드라마에서 의미 있게 차지하는 부분은 아니었으나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그 역할을 연기했던 것 같다. 보조출연자라는 조금은 특별한 아르바이트는 대학 생활에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선물받은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드라마에서 간호사들의 역할이 엉망진창으로 나오는 것을 볼 때, ‘아, 나라도 조연으로 출연해서 현실에 가깝게 간호사들의 멋진 모습을 리얼리티로 보여 주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실제로 해 보기도 한다. ‘간호사로 나오는 조연의 친구 역할 정도는 내가 리얼하게 연기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면서 말이다.

대학 시절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아르바이트는 한 세트에 3켤레 하는 양말을 가방 가득 넣어서 부동산이나 사무실 등을 방문하여 단돈 만 원에 판매하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아르바이트였지만 물건을 판매의 어려움을 직접 겪으면서 나름의 판매전략을 세우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처음 뵙는 어른들 앞에서 겁먹거나 위축되지 않고 양말을 사도록 설득하여 그분들의 지갑을 여는 대화법 등을 온몸으로 터득할 수 있었다. 더운 여름에 가방을 멘 여대생이 “안녕하세요. 사장님 혹시 양말 필요하세요?” 하면서 사무실과 가게 문을 두드리고 다녔을 것을 상상해 보라. 이것은 정말 도전 그 자체이다. 그러나 판매가 짭잘한 날은 카페 서빙이나 매장에서 물건을 파는 아르바이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어쩌면 이때부터 사업에 대한 매력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반복적으로 해내면서 한 달을 꼬박 기다리다가 월급을 받는 것도 의미는 있지만 내가 일하고 능력을 발휘한 만큼 대가를 받는 일이 참으로 매력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이템의 중요성도 느낀 것 같다. 양말의 경우는 판매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늘 사용해야 하고 사두게 되면 그냥 버려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나의 영업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병원에서 어떤 과를 선택해야 내 인생에 도움이 될까 선택해야 하는 부분은 양말을 팔까 아니면 우산을 팔까 결정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어떤 아이템이 가장 최선일까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젊은 날에 매우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다. 아르바이트는 실제 내 직업은 아니므로 ‘아, 이런 아이템이 훨씬 반응이 좋네. 이건 생각보다 반응이 없네.’ 하면서 나와 맞는 그 무엇을 온몸의 촉각을 통해 찾아가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지만, 압구정 모 백화점에서 외국의 그리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의 가방을 가판대에 펼쳐 놓고 팔았던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나이가 있는 어머님들을 대상으로 가방을 판매하려면 무조건 비싼 것을 권유하는 것보다 여러 가방을 비교했을 때 가격은 조금 저렴하더라도 어머님께 맞는 가방을 권유하는 것이 구매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싼 것이 무조건 좋은 거라고 은근히 부추기는 다른 판매원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차별화 전략을 펼친 것이다. 이렇듯 어머님들 한 분 한 분께 양심적으로 가방을 권해드리는 나의 모습에 딸처럼 믿어 주시며 많이들 사 가셨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인센티브를 보너스로 받았던 몇 안 되는 아르바이트생 중의 한 명이 될 수 있었다.

깐깐해 보이는 어머님들에게도 자신 있게 가방을 권유해 드리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해 보았던 것은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어떻게 하면 나를 신뢰하게 만들어서 가방을 구매하는 데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나만의 실험실로 아르바이트를 활용했다. “어머님, 이 가방이 가격은 더 저렴하지만, 수납공간이 잘 분리되어 있고 훨씬 가벼워서 어깨에 무리도 덜 가요. 색상도 무난해서 오랫동안 질리지 않는 거고요. 비싸다고 다 좋은 거 아니니까 이거 한번 메 보시면 어떠세요?”, “어머머, 피부 톤하고도 잘 어울리네요. 제가 사은품도 하나 더 넣어드릴게요.” 하면서 인심도 팍팍 쓴다. 어차피 회사 거니까 내가 다 가질 것도 아니기 때문에 판매 전략으로 사은품을 활용했다. 여기서 “특별히 어머님께만 더 챙겨드리는 거니까 다른 분들에게는 쉿!”이라는 멘트를 빠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되면 짧은 순간에 많은 대화가 오가지 않아도 나의 고객은 순식간에 VIP로 업그레이드되는 기분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고객과의 흥정이 이어지면 만사 오케이다. 구입은 물론이고 나를 바라보시는 어머님의 두 눈에 하트가 마구 솟아난다. 이후의 고객모집은 그 어머님께서 다 해 주신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주위 친한 친구분과 함께 다시 찾아오시는 것이다. 그러면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가 10년 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를 대하듯 다시 오신 어머님께 친한 척의 최대치를 보여드린다. 그럼 친구를 향한 가방 판매 마케팅은 그 어머님의 몫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어 있다. 여기에 거짓이나 속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가방에 대해 문의를 한 고객에게 최선으로 맞는 가방을 찾아드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해드린 것뿐인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고객님을 모시고 와 주셨으니 얼마나 반갑고 감사한 일인가.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기쁨을 표출했던 것이다. ‘이심전심’이라는 말과 ‘진심은 언젠가 통한다’는 말을 나는 확실히 믿는다. 그렇다고 내가 늘 성공했을까? 그것은 아니다. 준비한 멘트가 통하지 않을 때도 많았으나 거절당하는 것도 다 경험이라 생각하며 당시 상황을 즐겼던 것 같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를 몸소 실천하던 시간이었다.

여자들의 숫자가 월등히 많은 직종에서는 여자의 마음을 잘 알고 대처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 본다. 각양각색의 성향을 가진 여자들을 많이, 아주 많이 만나 보아야 한다. 나랑 코드가 맞는 친구들하고만 어울려서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경험치가 부족하게 되면 병원 생활은 물론 병원이 아닌 그 어느 곳에서도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내가 여자니까 당연히 나는 여자들의 심리는 잘 알지, 어떤 상황에서든 여자들을 대하는 것은 절대 어렵지 않아.”

당신에게도 이 말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고수 중의 고수이다.

병원에서 근무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정말 힘든 것이 여자들의 감정에 그때그때 알맞게 대처하는 것이다. 현재 남자간호사는 1만 명 정도이고 그 외 모든 간호사는 여자이다. 여성은 대하기 가장 어려운 고객임이 분명하다. 오죽하면 여성만을 연구하는 마케팅 그룹이 따로 있겠는가. 가방을 판매할 때 만나게 되는 고객이나 병원의 고객들은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모두가 나와는 초면이다. 얼굴을 알고 있는 고객이 방문한 경우에도 무조건 친한 척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가려운 곳을 정확하게 찾아내어 긁어 주어야 진정한 프로이다.

한국 간호사는 세계 어디에서 일하든 잘 적응하고 싹싹하게 일 잘하기로 유명하다. 우리가 누구인가? 눈치코치 백 단으로 삶을 이어온 사람들이 아닌가. 기회를 잘 찾아서 학생 때부터 이런 경험들을 해 볼 수 있다면 병원이라는 세계로 겁먹지 않고 뚜벅뚜벅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시간을 들여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이왕이면 인생에 유익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하라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선택함에 있어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이기만 하고 돈을 버는 일보다는 스스로 적극적인 모습으로 활약을 펼칠 수 있는 능동적인 일에 도전해 보길 권유하고 싶다. 세상의 쓴맛을 경험해 볼 수도 있고, 쉽지는 않지만 누군가를 설득하고 판매까지 이어졌을 때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로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남들이 쉽게 갖지 못하는 자기만의 스펙도 쌓으면서 돈도 벌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의 무한 잠재 가능성을 미리 파악해 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널스브랜딩』 중에서
 
 

 

저자 김명애
발행 포널스출판사
302쪽
판형 148*210
가격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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