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면?

A. 안녕하세요. 중앙대병원 혈액종양내과에서 근무 중인 6년 차 간호사 송상아입니다. 열악한 병원 곳곳에서 작은 행복들을 찾아가며 환자들과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일이 힘들고 때론 지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간호사라서 매일매일 자랑스럽고 행복한 현직 간호사입니다.

Q. 승무원에서 간호사의 길을 선택한 계기가 있다면?

A. 열일곱 살부터 승무원이 꿈이었고,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한국에 와서 항공과에 들어갔습니다. 운이 좋게 졸업 후 바로 국내 항공사 인턴을 할 기회가 생겼고, 트레이닝 중에 ‘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관두게 됐어요. 너무나도 바라고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경험해보니 제게 뜨거움을 주진 못하더라고요. 마음이 벅차고 뜨겁고 감사한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들어서 그만두게 됐습니다.

직장을 관두고 다시 미국으로 가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3개월 만에 엄마가 백혈병 판정을 받게 되셨어요. 그 길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엄마 옆에서 보호자로 있는 동안 어떤 직업을 가질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때 병원에서 만났던 간호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1년간의 투병을 옆에서 함께 겪었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을 더 많이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간호사를 선택했어요. 그리고 생명과 가까이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값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간호학과로 두 번째 대학을 졸업하고 이렇게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Q. 혈액종양내과에선 어떤 업무를 하는지요?

A. 저는 죽음과 가장 가깝지만 가장 희망찬 암 병동에서 근무 중입니다. 처음에 입사지원서에 1지망도 혈액종양내과, 2지망도 혈액종양내과를 지원했었어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가고 싶은 과를 정하고는 실습도 자원해서 혈액종양내과로 2번 이상 돌았을 정도로 혈액종양내과에 오고 싶어 했어요. 

주 업무는 암에 대한 치료를 위한 항암치료를 진행합니다. 업무 대부분이 항암제 투약과 이에 따른 부작용 및 암의 진행 증상을 조절하는 간호를 해요. 중증환자가 많은 관계로 많은 응급상황이 일어나고 그에 대해 기민하게 반응하고 만발의 대비를 해야 하는 곳이기도 해요. 그리고 말기 암 환자들의 임종을 다룹니다. 저희 병동에선 많은 환자가 죽음의 근처에 있어서, 치료적 행위뿐만 아니라 정서적 지지 또한 아주 중요한 곳이기도 해요. 이렇게 죽음과 가까워서 굉장히 어두울 것 같지만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히 내일을 위해 살아가는 희망 넘치는 병동이기도 합니다.

Q. 혈액종양내과에서 잘 적응하는 노하우는?

A. 다양한 병동 중에서 혈액종양내과는 지원율이 현저하게 낮거나 아예 없을 정도로 악명높은 병동으로 알고 있어요. 실제로도 많은 간호사가 환자의 죽음을 직접 경험하며 힘들어하기도 해요. 잘 적응하는 방법은 우선 마음을 굳게, 단단하게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호사에 대한 사명감을 안고 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아요. 나의 가치관과 사명감이 흔들리지 않고 나를 굳게 잡아줘야만 이곳에서 적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신규로 들어오기 전에 공부하고 싶다면 진단에 관한 공부를 하고 오면 좋아요. 항암제를 공부하려는 신규 선생님들이 많은데, 항암제는 너무 광범위하고 병원마다 또는 교수님마다 사용하는 약제들이 달라서 공부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리고 실제로 환자의 진단에 맞춰 항암 스케줄을 스케줄링하고 투여하다 보면 더 이해하기 쉬우므로 항암제를 미리 공부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요. 오히려 임상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기본 혈액검사들과 EKG 공부를 미리 해두는 것이 좋아요. 그리고 어느 병동이든지 3치를 갖추면 아주 적응하기 빠를 거예요. 바로 ‘눈치, 코치, 염치’입니다. 하하.

Q.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와 힘들거나 후회됐을 때는 언제였나요?

A. 어느 날 이브닝 근무를 정리할 때쯤 병동으로 한 할머니가 저를 찾아오셨어요. 임종을 위해 호스피스 병원으로 전원 가신 할아버지의 부인이셨어요. 3년간 저희 병동에서 투병하셨고, 늘 밝게 웃으시며 희망을 놓지 않았던 분이셨어요. 할머니께서 ‘선생님, 우리 아저씨 얼마 전에 하늘나라 가셨어요. 근데 자꾸 선생님이 생각나서, 고마웠다고 꼭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왔어요’라고 하며 저를 안아주시며 연신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곤 제게 단팥빵을 건네주셨는데, 많은 감정이 들며 눈물이 나더라고요. 호스피스에 가셔서도 제 이름을 기억하시고는 고맙다고 말도 못 전했다며 아쉬워하신 할아버지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늦은 밤 한 시간이 넘는 길을 달려오신 할머니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오늘 인사한 환자들의 침상이 내일 출근해서 비어있어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닌 이곳에서 제가 가장 보람차고 감사하는 것이자 동시에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처럼 너무나도 특별했을 한 사람의 인생의 마지막 때에 제가 그들의 기억한 켠에 남는 일이에요. 어쩌면 생에서 마지막으로 마주하는 사람이 저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장 감사하고 두려운 일이죠. 그래서 매 순간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이 ‘나’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투병하시다가 임종을 제가 맞이해드렸던 환자분들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열아홉의 꽃다운 소녀부터 백 세에 가까운 어르신들까지, 이곳에 근무하면서 정말 많은 분이 제 마음속의 별이 되었어요. 아직도 환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지지만, 그분들 덕분에 제 마음은 반짝 반짝이는 별천지이기도 해요. 그 별들을 또 우리 환자들의 캄캄한 하늘에 띄우고, 밝혀주고…. 매일매일 보람차고 기억에 남는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간호사가 된 것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지만 늘 후회하는 간호를 합니다. 완벽한 간호는 없고 날마다 퇴근 때 드는 생각이 ‘한 번 더 가볼걸, 한 번 더 들을 걸, 한 번 더 물어볼걸’의 후회입니다. 병원에서 의지할 곳이라곤 담당 간호사밖에 없는 환자들에게 한마디 더 건네주지 못한 그것들이 후회로 많이 남아요. 이렇게 날마다 후회하지만, 또 그 후회로 매일 성장하는 직업이 간호사라고 생각해요.

Q. 간호사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A. 이 질문은 고민이 많이 되는 질문이에요. 그리고 매년 질문의 답이 바뀌기도 합니다. 이타심, 양심, 공감 능력…. 많은 자질이 중요하지만 저는 공감 능력을 최우선으로 꼽고 싶어요. 공감 능력의 유무를 통해 기계적인 간호사와 인간적인 간호사로 나뉜다고 생각해요. 공감 능력은 투약 및 처치 등의 치료적 업무만 하고 퇴근하는 간호사와 환자의 건강증진을 위해 치료적 업무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돌보는 간호사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모든 의료인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자질은 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투약을 잘못하거나 실수가 있을 때 선배든 후배든, 누구 앞에서든 진심으로 인정하는 태도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나의 실수나 동료의 실수에 대해 눈감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하는데, 그때 양심을 굳건히 지키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양심을 포기하면 그 즉시 환자에게 해가 가요. 우리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지만, 그것을 반성하는 것과 숨기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요. 양심은 누군가가 가르쳐 줄 수 없으므로 스스로 꼭 간직하면서 근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이란 건 참 무거워서 가장 먼저 버리고 싶고 가장 먼저 버리기 쉽지만 무거운 만큼 가지고 있으면 내 마음의 무게중심을 굳게 잡아줄 거예요.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A. 당장 코앞에 있는 목표는 얼마 전 포널스출판사에서 주관한 간호 문학 공모전에서 감사하게도 ‘대상’을 수상해 지금은 원고작업에 매진하고 있어요. 많은 이들의 어두운 하늘에 작은 반짝임이 될 수 있는 책을 내는 것이 지금 당장 앞에 있는 목표예요. 장기적인 목표로는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를 진행할 예정인데 분야를 아직 선택하지 못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종양전문간호사를 위해 종양전문대학원 진학을 꿈꿔왔는데, 시뮬레이션이나 다른 분야들도 흥미로워서 어느 쪽으로 진학할지 깊이 생각 중이어요. 이렇게 저는 늘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만, 그때그때 제게 물어요. ‘그땐 그랬는데, 지금은 어때?’ 몇 달 전 혹은 몇 년 전의 저와 지금의 저의 마음이 다를 수도 있기에 목표만 보고 달리지 않고 중간중간 계속 저 자신에게 물어보곤 합니다. 

더 나아가 저는 ‘사랑스러운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똑똑한 간호사, 친절한 간호사, 프로페셔널한 간호사 등 많은 간호사의 모습들이 있겠지만, 저는 환자들에게 사랑받고 환자들을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이것이 저의 첫 마음, 초심이에요. 기나긴 암 투병으로 지칠 대로 지치고 메말랐을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에 제가 작은 위로와 따스함이라도 줄 수 있다면 저는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이것이 제가 원하고 제가 꿈꾸는 간호사의 모습이자 제가 그토록 간호사를 하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환자들에게는 사랑스러운 간호사가 되고 싶고, 동료와 학생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특히나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이렇게 멋진 직업이 있다고 말해주고, 보여줄 수 있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비전특강이나 멘토링에는 만사를 제치고 달려가서 모두에게 이렇게 얘기하곤 해요. ‘간호사 하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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