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A.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 울산대를 졸업하고 현재 울산대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9년 차 간호사 한경미입니다. 한때는 일기나 독서 등 문학과는 담을 쌓으며 저축도 없이 내일이 없을 것처럼 천방지축으로 지내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금은 글쓰기와 사진찍기로 정적인 취미를 즐기고 있습니다.

Q. 간호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A. 면접 단골 질문에 예전의 답변은 “어릴 때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요. 당시의 병원 생활에서 간호사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사실 그건 진심이 아니었어요. 어렸을 적 병원 생활에서 나를 돌봐주었던 간호사가 기억나진 않거든요. 지금은 “부모님이 원하는 교사 또는 공무원이 되기 싫어서 간호사를 선택했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반항심이었는지 교대말고 간호학과 가겠다고 부모님께 생전 쓰지도 않던 편지까지 쓰며 투항했거든요. 그러고는 기숙사 통금 시간이 없는 울산대학교 간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부모님께 반항하기 위해”가 되겠네요. 솔직히 말하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
 
Q. 간호사로 9년 동안 근무하셨는데, 어떤 업무를 하셨나요?

A. 외과 및 장기이식 병동에서 6년, 소화기 내과 병동에서 2년 있었습니다. 신규간호사와 경력간호사를 포함해 간호사 6명의 프리셉터를 해왔었고,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6명 모두 병원에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간호본부에서 간호사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간호사로 있습니다. 신규간호사 교육을 하기도 하고, 좋은 교육이 있으면 소개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교육을 진행하지 않아 아쉽습니다.

Q. MBC <비밀낭독회>에 출연하셨는데, 나가게 된 계기가 있다면?

A. 생각이 너무 많아서 질문에 즉답을 못하거나 종일 생각만 하다가 하루를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생각들을 정리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MBC에서 개인적으로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연락이 왔을 당시에는 “겁이 나서 방송을 못하겠다”라고 했더니, PD님이 울산에 내려와서 “이왕 하실 거, 해보시죠”라는 한마디에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출연하게 됐습니다. 글로 표현했던 생각 대부분은 신규시절 어렸던 저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던 병원에서의 사건 회상, 환자가 낯선 병원에서 홀로 느꼈을 감정 상상 및 공감, 미성숙한 나에 대한 자기반성 등이었습니다. 처음엔 감정 해소의 목적으로 업로드했던 일기가 지금은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여러 주제를 가지고 제 생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Q. 일기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메모장입니다. 생각을 속으로 가지고만 있을 때는 혼란스럽던 것들이 손으로 쓰게 되면 정리가 되면서 자연스레 정답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 때문에 화가 났다가도 일기를 쓰면서 환자가 이해가 되거나, 힘들었던 감정이 해소되거나, 고민했던 것들이 정리되곤 합니다.

Q. 임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환자가 있다면?

A. 한 분만 꼽을 순 없습니다.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하다가 하늘의 흰 구름을 보고 백발의 환자가 생각난다든지, 밤하늘의 빛나는 별을 보고 눈빛이 초롱초롱했던 환자가 생각나는 등 혼자 집에 가다가 문득문득 연상되는 환자분들이 있네요.
 

Q. 책 출간을 한 이유와 그 과정을 말씀해 주신다면?


A. MBC <비밀낭독회>를 보고 현재 북레시피 대표님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과정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되기 직전에 계약을 했던 터라 제가 바빠서 글을 보내드리지 못했는데 오히려 출판사에서 아무 말 없이 기다려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제가 남성적인 성격이라서 다소 과격한 일기들이나 표현들은 편집장님이 예쁘게 수정해 주셨구요.

Q. 책을 쓰고 난 뒤 아쉬운 점이 있다면?

A. 책을 받아놓고 다시 보니 우울하고 자조적인 내용이 많이 있어서 보는 사람도 그걸 느끼진 않을까 살짝 걱정됐습니다. 조금 더 활기차고 재밌고 예쁜 내용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날보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 쓴 일기가 많았네요. 그리고 제가 병동에서 일했던 시절에는 짜증, 우울, 분노로 가득 차 있어서 신규간호사들에게 잘 대해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쓴 책을 다시 읽고 제 모습을 되돌아보니 그 부분이 아쉽고 후회되네요.
 
Q. 책에 담긴 이야기 중에서 후회되는 부분은?

A. 생각이 원체 많은 성격인지라 잘했다고 생각했던 일도 나중엔 후회되고, 실수했던 사건들은 두고두고 곱씹어보며 개선하고자 했던 내용이 모두 일기에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발작하던 환자가 멍청하게 서서 쳐다만 보던 신규간호사 시절 제 손을 붙잡고 “이런 더러운 모습을 젊은 아가씨가 보게 해서 미안해요”라고 말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요. 그 말과 사건을 5년 동안 계속 테이프 감듯이 돌려보고 곱씹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나는 무얼 했어야 했을까?’ 하구요. 5년 뒤, 위암 환자의 복수로 젖은 거즈를 처치하는데 환자가 5년 전 그분과 똑같은 말을 합니다. “더러운 것 만지게 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저는 5년 동안 묵혀두었던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런 마음 가지게 해서 제가 더 미안해요”. 만약, 제가 신규간호사 시절에 완벽했더라면 저를 되돌아볼 이유도 없었을 테고 저런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비인간적인 로봇이 되지 않았을까요? 지금에서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네요. 저를 통해 위로를 받기는커녕 본인이 피해를 준다고 생각했던 발작 환자에게 손을 잡고 죄송했다고, 그 어린 간호사가 지금은 신규간호사를 교육하는 간호사가 됐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Q. 향후 계획이 있다면?

A. 소망은 재미있게 사는 것이고 목표와 계획은 없습니다. 생각이 너무 자주 바뀌어서 계획을 세워도 결코 계획대로 안 됩니다. 목표도 세워봤자 너무 이상적이고 막상 목표를 향해 달려갔는데 생각했던 것만큼의 아니었을 때의 실망감을 생각해보고 싶지 않아요. 지금 당장 즐거워서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면 언젠가는 길이 알아서 오더군요. 제가 일기를 쓰게 될 줄, 그걸로 방송에 나가고, 책을 내게 될 줄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고 계획한 건 더더욱 아닙니다. 그래서 이 인터뷰도 믿기지 않으면서 재밌고 즐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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