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것은 이미 일이 잘못된 뒤에 애를 써 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을 비꼬는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슨 일이 닥치기 전에 미리 대비를 잘해 두어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어떠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대비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 문제가 생기고 나면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그 문제를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할 수는 있다.

내시경실에서는 간혹 진정수면의 역설 반응으로 환자가 몸을 격하게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이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환자가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시경 기구가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환자가 격하게 움직이며 이로 내시경을 물어 버리는 경우가 그렇다. 강하게 물게 되면 내시경은 다음에 사용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수리를 보내야 하는데 이런 경우 내시경은 수천만 원의 고가의 수리비가 들게 된다.

2011년 처음 내시경실에서 근무를 하면서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덩치가 큰 환자가 내시경 검사를 받는 도중 내시경 기계를 물어 버리고 말았다. 내시경 검사할 때 환자들은 입에 마우스피스(mouth piece)를 물고 검사를 한다. 마우스피스의 구멍을 통해 내시경이 입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환자들이 내시경 기계를 물고 싶어도 물 수가 없다. 하지만 수면 중에는 물고 있던 마우스피스를 혀로 밀어내어 버린다. 그리고 힘으로 마우스피스를 빼내어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마우스피스를 입에서 빼낸 후에 내시경 기계를 물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세상이 무너져 버린 것만 같았다. 내시경실 근무 경력이 얼마 없었던 시기였기에 환자가 기계를 문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냥 눈으로 보기에도 움푹 들어가 버린 내시경 기계를 보고 있자니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모든 게 다 나의 탓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검사를 끝내고 내시경 기계를 들고 선배간호사에게 보여 주었더니, 다른 병원에서는 경위서를 쓰거나 수리 비용을 간호사가 부담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눈앞에 깜깜해져 왔다. 어떻게 다시 들어온 병원인데, 쫓겨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몇천만 원씩 하는 수리 비용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겁이 났다. 그때 문득 부모님의 얼굴도 파노라마처럼 스치듯 지나가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결국 검사실 구석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훔치고야 말았다. 훌쩍 거리다가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마음을 추스르고 수간호사 선생님께 갔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열었다.

“선생님, 내시경 검사 중에 환자가 너무 움직이면서 내시경을 물었습니다. 그래서 내시경 삽입관이 움푹 들어갔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지요?”
“아~, 또 물었니? 수리 보내야겠네.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수간호사 선생님 한마디에 몇만 톤이나 되었던 내 어깨의 무거운 짐이 날아가 버렸다. 역시 평간호사 때부터 내시경실에서 일하셨던 수간호사 선생님이라 우리들의 고충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 그리하여 내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큰 문제없이 내시경 기기 업체에 연락을 하고 바로 수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간호사들은 대책 회의를 했다. 경력이 있는 간호사들은 이런 경우가 종종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기계 손상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지만 갑자기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기에 간호사도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음을 인정해 주었다. 그러자 나는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리고 우리는 검사 도중 환자들이 많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환자들이 물고 있는 마우스피스를 다시 한번 꽉 조이는 방법으로 환자들이 내시경을 물지 못하게 잘 조절해 보자는 대책을 내렸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나는 환자들의 움직임에 유난히 신경을 많이 쓴다.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는 환자들이 입에 물고 있는 마우스피스를 제대로 고정시키기 위해 더 노력한다. 그리고 요즘에는 검사 시에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마우스피스를 계속 잡아 주면서 검사를 진행한다. 그리하여 그날 이후 지금까지 검사하면서 내시경 기계를 물린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렇게 한번 호되게 당하고 나니 정말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주사침 찔림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사용한 주사기를 침과 분리하는 과정에서 찔리기도 하고 폐기물통에 버리는 과정에서 찔리기도 한다. 환자들이 사용한 바늘에 의료진이 찔리게 되면 혈액에 의한 감염의 우려가 있다. 그렇기에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예방이 가능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주사침 찔림 사고 횟수는 쉽게 줄지 않고 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직원 안전사고 보고체계를 만들어서 찔림 사고 발생 시 보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보고된 내용을 통해 어떻게 찔리게 되었는지를 확인한 후 병원 전체에 찔림 사고 예방에 대한 공지사항이 내려온다.

보고내용에 주사침에 다시 뚜껑을 씌우다가 찔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자 병원에서는 주사 후 뚜껑을 다시 씌우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내렸다. 때로는 주사침이 일반 쓰레기통에 버려져서 청소하는 직원이 쓰레기통을 비우다가 찔리기도 했다. 그럴 때는 주사침을 주의해서 폐기물 통에 버리도록 공지가 내려지기도 한다. 이렇게 보고되는 공지사항을 보면서 직접 겪지 않은 직원들도 ‘아, 이렇게 해서 찔릴 수도 있겠구나.’ 하며 간접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더욱 찔림 사고에 주의를 하게 된다.

이러한 사고들은 미리 예방하는 것이 좋지만 병원 내 보고체계를 통해 사고 발생 이후 적절한 대처방안을 생각해 내어 다음의 사고를 방지해야 한다. 또한 예상치 못한 다른 직원들에게도 교육 자료가 될 수 있기에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이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비꼬는 시대는 지났다. 소를 잃었다고 낙심하기보다는 또 다른 소를 잃지 않기 위해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그렇기에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경험을 바탕으로 두 번 다시 그러한 일이 생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꿈을 간호하는 간호사』 중에서)
 
 

 

저자 조원경
발행 포널스출판사
300쪽
판형 128*188
가격 1만6000원
저작권자 © 간호사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