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눈앞에 수표가 한 장 있다고 하자. 그 수표는 10억짜리 수표이다. 이제는 그 수표를 발로 밟았다. 그 수표는 여전히 10억짜리 수표인가? 그렇다. 여전히 10억의 가치가 있는 수표이다. 이번엔 손으로 한번 구겨 보자. 구겨진 수표도 여전히 10억의 가치가 있는가? 여전히 그렇다. 이렇게 종이 하나에도 10억이라는 가치가 매겨지면 발로 밟든 구겨지든 가치는 영원히 유지된다.

어느 특강에서 받은 질문이다.
“당신의 눈을 1억을 준다면 팔겠습니까?”
- “아니요.”
“그렇다면 10억을 준다면요?”
- “아니요.”
“그럼 팔을 하나 팔면 10억을 준다… 팔겠습니까?”
- “아니요.”
“혹시, 파실 분 계신가요?”
- “…….”
“이렇게 10억 이상의 가치를 가진 분들이 왜 100만 원의 월급에 급급해하면서 힘든 인생을 삽니까? 인생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사십시오.”

이렇게 단 몇 마디의 질문을 받으면서 수만 가지의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중에 가장 오래 되뇌어 본 것은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부분이다. 10억보다 더 귀중한 나를 다시 깨달은 것이다. 우리의 몸은 10억 이상이며 이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살면서 이런 가치를 잊고 나 자신과 나의 인생을 너무 값싸게 대해 온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대학을 가지 못했다고 나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학을 가든 안 가든 나는 여전히 10억 이상의 가치를 가진 ‘나’이며 가치 있는 인생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러한 사실을 망각한 채 산다. 그래서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때로는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또는 자신만의 삶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산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직장이 아니라 부모님이 원하는 직장을 택하기도 하고 친구를 따라 대학을 정하거나 직장을 택하기도 한다. 이것은 진정한 나의 삶이 아니다. 한 번뿐인 나의 인생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서야 되겠는가. 우리는 행복하게 살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기에 자신이 꿈꾸는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간호사 8년 차 때 일이다. KTX를 타고 서울에서 집으로 오던 때의 일이다. 피곤한 몸이었지만 그날따라 잠은 오지 않아서 뒤척이고 있었다. 갑자기 안내방송이 나왔다.

♬딩동댕♬
“안내 말씀 드립니다. 열차 내에 응급환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열차 내 고객님 중 의사나 간호사가 계시면 15호 차로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방송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갈까 말까 망설일 틈도 없이 그냥 몸을 일으켜 15호 차로 향했다. 나는 특실 2호 차에 타고 있었기에 15호 차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가는 길에 승무원을 만났는데 급하다며 꼭 가달라는 말을 하며 감사하다는 말도 했다. 승무원을 만나고 나니 내 마음은 더 급해졌다. 전해 듣기로는 뇌전증 환자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가는 길에 머릿속은 온통 가상의 시나리오로 가득 찼다.

‘뇌전증 환자의 발작이면 가장 먼저 다치지 않게 안전한 장소에 눕혀야 하고 혹시나 혀가 뒤로 넘어가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손수건이라도 물려야 한다…. 주변에서는 기초 응급조치가 취해졌을까? 과연 의료진이 왔을까?’

그렇게 긴긴 시간을 걸어서 15호 차에 도착했다. 다행스럽게도 내과 의사 두 분이 먼저 와서 환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발작은 이미 끝난 것 같았다. 그 옆으로 많이 놀란 듯 상기된 얼굴을 한 승무원이 환자에게 물을 권하고 있었다. 하지만 환자는 괜찮다고 집에 가서 약을 먹으면 된다고 했다. 다행히 환자도 원래 알고 있는 병이라서 큰 문제 없이 해결이 되었다. 그렇게 조용히 해결이 되고 나는 다시 2호 차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나를 안내해 준 승무원을 만났다.

“고객님, 감사합니다.”

나는 사실 가서 한 게 없었기에 승무원의 큰 감사 인사에 내가 더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렇게 자리에 앉자마자 피곤함이 몰려와서 잠들어 버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승무원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오 마이 갓. 동대구역을 지났다고 했다. 승무원은 다행히 10분 뒤에 신경주역에 정차하면 동대구역으로 가는 열차가 있다고 안내해 주었다. 그러면서 “아마도 아까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네요.”라며 열차 시간표에 ‘오승처리’ 확인 표시와 함께 자신의 사인을 한 영수증을 주면서 따로 표를 끊지 말고 이 표를 그 열차의 승무원에게 보여 주라고 했다. 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그렇게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몸은 피곤했지만 아주 큰 보람을 느낀 하루였다.

이날의 사건을 떠올리면 지금도 놀랍다. 어떻게 그렇게 자동으로 몸이 움직였는지, 아무도 내가 간호사라는 사실을 모르는데도 기꺼이 응급환자를 돕기 위해 내가 한 발짝 움직였다는 사실이 굉장히 가슴 벅차다. 내가 간호학을 배우고 병원에서 일한다는 것이 세상 밖에서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그러한 나의 삶에 가치를 부여했기에 기꺼이 그 일에 앞장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전해 들은 동료 간호사들도 처음 들어 본 일이라며 신기해하면서도 정말 소명 의식이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진짜 ‘힘들다, 힘들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8년 차로 접어들면서 간호사라는 직업과 내가 하나가 되어 진정한 소명 의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삶에 가치를 더했기에 비록 기차 내리는 순간을 놓쳤지만, 승무원의 배려로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또한 지금의 가슴 벅찬 감동도 함께 누리며 이렇게 책에도 적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순간, ‘간호사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라며 선뜻 나서지 않았더라면 내 마음에는 ‘그때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을 것이다.

내시경실에서 일하면 종종 환자들의 침과 똥을 닦아 주어야 한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간호사인데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다르게 허드렛일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에 가치를 부여하면 달라진다. 환자들의 건강을 위해 더 나아가 질병의 조기 발견을 위해 시행하는 검사를 돕고 있다고 생각하면 하루하루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 환자는 빨리 암을 발견할 수 있고, 또 암을 수술한 경우에는 잘 치료되고 있는지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옆에서 이러한 조력자가 없다면 검사를 시행하는 의사 역시 내시경 시술에 집중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당신이 환자라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는 간호사에게 검사를 받고 싶은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저 환자 침 닦아 주고 똥 닦아 주는 게 다라고 생각하는 간호사는 정말 그 정도의 일밖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환자들의 건강을 위해 일을 하며 의사들의 조력자라는 생각으로 일을 한다면 하나하나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렇게 일하면 환자도 의사도 그 이상으로 간호사를 대접해 준다.

이렇게 자신의 인생의 가치는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내가 어떻게 내 인생에 가치를 매기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도 나를 그 정도의 가치로 인정해 주게 된다.

아무도 내 인생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주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라.(『꿈을 간호하는 간호사』 중에서)
 

 

저자 조원경
발행 포널스출판사
300쪽
판형 128*188
가격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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