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부터 다양한 대외활동을 해 왔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여기에 더하여 나의 활동 반경은 우리 학교를 벗어나 전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요즘처럼 해외여행이 자유롭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았던 환경에서 대학 2학년 때는 홍콩으로, 3학년 때는 중국으로 단기선교를 떠난 적이 있다. 그때마다 학생 신분에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는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나는 모금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지금처럼 손쉽게 메일을 쓰거나 카톡 등으로 자유롭게 연락하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모금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나만의 사업(여행)계획서를 손수 정성껏 만들어 내 주위 아는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였다. 여행계획서에는 넓은 세계를 보고 돌아와서 더 큰 비전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는 내용과 향후 돈을 벌게 되면 간호사 후배들에게 받은 것 이상으로 후원을 하겠다는 내용을 빼곡히 적었다. 신기하게도 적지 않은 금액이 십시일반으로 모여서 나는 부족하지 않은 재정으로 단기선교를 떠날 수 있었다. 사회에 나와서 내가 직접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후배들을 돕겠다고 선언했던 약속을 잊지 않고 내가 받았던 것 몇 배로 후배들을 후원하고 있다.

나만을 위한 모금은 학생 때만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금을 통해 재정을 채울 수밖에 없었고, 간호사가 되어 돈을 벌면 10배 이상 갚겠다고 다짐하면서 도움을 주신 분들의 정성과 기도에 보답하고자 주어진 일정에 더욱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모금을 통해 해외 단기선교를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거나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일반여행도 아니고 누군가를 돕기 위해 가는 단기선교니까 이렇게 가는 것이 맞다고 스스로 확신을 했다. 그래서인지 한여름 무더위에 더운 줄도 모르고 종로에 있는 인쇄소를 몇 번씩 들락거리며 지인들에게 보낼 나의 기도편지(여행계획서)를 정성껏 만들고, 한 장 한 장 우표를 붙여서 도움을 주실 만한 분들께 보내드릴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시간을 떠올리면 스스로가 대견스럽게 여겨져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에는 중국의 20개 성을 돌아다니면서 각 대학의 정보를 수집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된다.

각 팀은 5명이었고 겨울이라 짐도 많고 이동 거리도 상당했다. 한 달 정도의 기간 동안 중국에 머물기 위해서 학생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꽤 많은 금액이 필요했다. 우선 나는 1차·2차에 걸쳐 모금과 후원 관련 편지를 만들어 발송했다. 2차 후원 편지까지 보내고 통장을 확인하니 계획했던 모금액이 거의 다 채워지고 딱 10만 원의 금액이 부족했다. 이 부족한 금액을 어찌 채울까 하다가 3번째 모금 편지를 쓰게 되었다. 삼단으로 접어서 펼치면 바로 읽을 수 있는 카드 엽서 형태의 편지를 한 땀 한 땀 정성껏 만들어서 나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후원해 줄 수 있는 분들에게 전달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교회 남자 사람 친구가 나에게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봉투를 열어 보니 10만 원이 들어 있었고, 나는 너무나 놀랐다. 그 친구의 가정형편이 그닥 넉넉하지 못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돈을 어떻게 구했냐고 묻자 그 친구는,

“응, 공사장에 나가서 벽돌 나르는 아르바이트했어.”
 
라고 말하며 씨익 웃는 것이었다.
 
나의 꿈과 비전을 보면서 자기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꼬박 이틀간 공사장에서 일한 것이었다. 친구의 찐한 우정을 알 수 있는 정말 감동적인 사건이었다(그 남자 사람 친구는 지금도 친하게 잘 지내고 있다).

“대학생 때 나만큼 놀아 본 사람 있으면 나와 봐.”

혹시라도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바로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학생들에게도 권장한다. 간호대학에 와서 4년 내내 옆에 간호학과 친구하고만 놀지 말고, 다른 과와의 교류를 위해 미팅도 전략적으로 하라고 매번 수업 오리엔테이션에서 강조하고 있다. 미팅, 소개팅 모두 합쳐서 앞으로 100번을 채우라고 진심으로 이야기해 주는데 수업 시간에 기회가 되어서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3~4학년이 되도록 10번을 넘긴 경우를 보기가 어렵다.

“미팅 100번이라니요. 너무 많은 것 아닌가요?”

라고 반문할 것 같은데 내가 해 보았기 때문에 권유하는 것이다.

대학 때 나를 포함한 미팅 멤버는 지금까지 끈끈하게 우정을 쌓아 오고 있다. 평일은 물론 주말이면 미팅 멤버들과 화려한 스케줄에 맞춰서 하루에 미팅·소개팅을 2탕, 3탕 뛴 적도 허다하다. 미팅을 통해 남자친구를 사귀겠다는 목적보다는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을 만나 보고 친한 친구들과의 재미와 추억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 컸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유쾌한 추억들이 나의 뇌리에 귀한 선물처럼 자리잡고 있다.

얼마 전에 그 미팅 멤버들과 함께 발리로 여행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대학 시절의 미팅에 관한 추억을 곱씹으며 배를 부여잡고 깔깔거리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을 만큼 100번의 미팅은 우리 모두에게 기분 좋은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추억이 많다는 것은 바쁜 삶을 사느라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고 세월이 흐른다 해도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가장 끈끈한 매개체임을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달은 순간이었다.

요즘 간호학과 학생들은 미팅도 소개팅도 연애도 잘 안 하는 듯하다. 지금 나는 이성을 만나 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만남을 통해서 좋은 친구들을 만들고 다양한 경험과 자신만의 추억을 소유하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연애도 결혼도 관심이 없는 학생이 많은 요즘과 비교하면 나의 이 화려한 경력은 지금 시대에는 특별한 이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널스브랜딩』 중에서)
 

 

저자 김명애
발행 포널스출판사
302쪽
판형 148*210
가격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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