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하는 일과 자신에 대해 간단히 소개 한다면?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해, 현재는 충북 청주의 예미담요양병원에서 병동 생활을 하고 있는 정주영 간호사입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는 약 20년 정도 됐지만 간호사로 일한 건 7~8년밖에 안 되다 보니, 간호사라고 소개하는 것이 조금 어색하네요. 처음 학부 생활을 시작할 때는 많은 간호학과 남학생들이 그러는 것처럼, 수술실이나 중환자실 등 특수파트 근무를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다년간의 실습과 다른 직종 근무를 통해, 사람과의 소통과 상황의 조율에 재능이 있다고 판단해 병동에서 정식 근무를 시작했고, 다행히 잘 맞아 계속 병동 생활 중입니다. 신규 생활을 하면서부터 베이비붐 세대의 노령화와 맞물려 대두되는 노인 문제에 관심을 두다 보니 자연스레 요양병원에 관심을 두게 됐고, 현재는 치매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과 보호자들이 치매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에 중점을 둔 케어를 목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운이 좋게 현재 근무하는 병원의 경영진과도 뜻이 잘 맞아, 그냥 병원에 근무하는 한 사람이 아닌 환자 케어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으면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 간호사는 왜 선택하게 됐나요?
 
개인적으로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고3 때였는데,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뭘 해야겠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어디선가 ‘간호학과에 가면 취직 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당시 가족들도 이런저런 잔병치레가 많았기에, 병원 관련 일을 하면 굶지도 않고 가족에게 도움도 되겠다 싶어 간호학과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에 가장 중요한 ‘내가’ 없었던 이유 때문인지, 대학 시절에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학교 졸업 후 종합병원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실제로 겪어본 간호사는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전문직 의료인이라는 높은 프라이드에 비해, 직장에서의 대우나 사회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던 적이 많았지요. 그래서 잘 다니던 종합병원을 사직하고 ‘내 인생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다른 직업을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결국 다 똑같더라고요.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간호사로 일하게 됐습니다. 다른 하나는 구직 과정에서는 단순히 연봉이나 급을 따지기보다는, ‘동료들과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곳’, ‘나라는 간호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전국의 채용공고를 찾았고 그렇게 찾아낸 곳이 현재의 직장입니다. 지금 있는 곳의 조건은 분명 최고는 아니지만, 지금 제 상황에서는 최선의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만족하며 근무 중입니다.

◆ 간호사를 선택했지만, 남자라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주변의 이상한 시선이나 무례한 질문, 소개팅 요청 같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취직 후에는 남성용 탈의실이 없어서 지하의 창고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힘쓰는 일에 불려가기도 했었죠. 병동 간호사지만 남성이라 그런지 환자분들의 거부감 때문에 몇 번의 뜻하지 않은 사건도 경험했습니다. 여성 환자분을 처치하는 과정에서 손대지 말라며 여성 간호사를 불러 달라고 하거나, IV fail로 생긴 멍을 때린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은 적도 있고, 어떤 남자 환자분들은 동성애자 아니냐면서 노골적으로 기분 나빠하기도 했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밤에 병실을 순회하며 체위 변경하는 것을 옆자리 환자분이 성추행으로 오해하셔서 경찰분들이 병동에 오신 적도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정말 많은 일을 겪어왔었네요.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이런 일들을 겪었다면 괴로웠겠지만, 전부 예상했던 일들이었기 때문에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말 몇 마디에 휘둘려서 억지로 해명하다 보면 오히려 오해가 깊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묵묵히 제 일에 집중하며 극복했습니다. 결국, 진심은 통하더라고요.

◆ 가장 인상 깊었던 환자도 있다면?

종합병원에서 일할 때보다 요양병원에서 일하면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을 많이 겪다 보니, 인상 깊은 환자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중 한 케이스만 꼽자면, 치매 환자는 아니지만, 보호자의 케어 문제로 입원하신 어르신이 한 분 계셨습니다. 성품이 워낙 좋으셔서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하시고, 치매 환자분들이 행동증상을 보여도 짜증 한번 안 내시던 정말 신사적인 분이셨지요. 저는 근무 외 시간에도 환자나 보호자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은데, 특히 이 어르신과 대화를 할 때면 스님과 선문답한 것처럼 인생에 대한 조언을 조금씩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지금 있는 방이 시끄러우니 독방을 쓰고 싶다고 요구를 하시더라고요. 바로 옆자리 환자분이 야간 행동증상이 있으셨기에, ‘평소 아무 불평 없으셨지만, 속으로는 힘드셨구나’하고 개인실로 자리를 마련해드렸습니다. 이후 새벽에 병실 순회를 도는데 어르신이 안 주무시고 앉아계셨습니다. ‘일찍 깨셨나보다’하고 지나가려는데 어르신께서 “밤에 잠도 못 자고 못 볼 꼴 보는 것이 힘들지 않은가?”라고 물으시기에, “남의 돈 천 원 빼먹는 게 어디 쉽겠습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라고 답했더니 “생각이 되었구나. 몸 잘 챙기고 살아!” 이러시더니 누우시는 겁니다. 뭐지 싶었는데 그게 마지막 대화였어요. 평소 인생을 통달한 ‘도인’ 같은 분위기가 있으셨는데, 본인이 떠나실 때도 알고 계셨던 건가 싶을 정도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무엇인가 가르침 주고 떠나신 느낌도 들었고요. 아마 평생 못 잊지 않을까 싶습니다.

◆ 임상에서 받는 스트레스 자신만의 해소법이 있다면?

업무 시간에는 저만의 ‘노동요’를 틀어놓고 근무를 합니다. 주로 클래식, 재즈, 뉴에이지 등을 듣는데,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도 좋아하고 면회 오신 보호자 분들께도 반응이 좋아요. 불면을 호소하시는 분께는 수면 유도 음악을 틀어드릴 때도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경영진에서 블루투스 스피커도 병동에 비치해 적극 활용 중입니다. 퇴근 후 귀가하면 스트레스가 누적되지 않게 그때그때 바로 털어버리는 것을 목표로 게임, 독서, 작문, 그림, 모형, 요리, 음악, 악기, 운동 등등 매일 조금씩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일하면서 얻는 스트레스는 ‘나’ 이외의 외부적인 부분이 원인이 되는 것이 많고, 간호사로서 항상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외향적인 부분이 강요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취미는 실내에서 조용히 내면에 집중하는 것들을 선택하게 된 듯합니다. 특히 ‘마음 챙김’ 부분은 ‘아내’의 몫이 아주 커요. 저에게 아내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취미를 함께 즐기는 친구이면서 속 이야기를 허물없이 터놓을 수 있는 최고의 상담사이기도 합니다. 저는 작은 것들까지 세세하게 고민하고 챙기는 스타일이라 늘 신경이 예민하고 항상 무엇인가를 고민하는데, 아내가 저와는 다른 시각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부드럽게 마음을 어루만져주니 그만한 힐링이 없는 것 같아요.

◆ 간호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우선 틈틈이 감상문을 써봤으면 좋겠습니다. 신규 선생님을 교육하다 보면 항상 느끼는 것이, 다들 머리에 집어넣기는 잘하는데, ‘과거의 어떤 사건이 현재에 영향을 주고, 현재의 어떤 일이 원인이 되어 미래의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이다’라는 인과 관계와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약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쉬운 예를 들어 어떤 환자의 혈당 수치가 높게 측정이 되었으면, 간식을 먹었거나 당뇨약을 안 먹었거나 등의 예상되는 원인을 생각해 환자에게 확인하거나 후속 조치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잘못하는 거죠. 우리는 항상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의 과정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상문을 써보면서 과거, 현재, 미래의 흐름을 파악해 생각을 꺼내는 연습을 하면 임상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이다’, ‘나는 무엇을 좋아한다’,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해보고 싶다’ 등등 말이죠. 간호사로 살다 보면 ‘동기는 잘하는데 나는 왜 못하지’, ‘이렇게 하는 줄 알고 했는데 선배한테 혼났다’, ‘저 환자 억지 부려서 힘들다’ 등등 부정적인 생각들에 치이면서 마음이 꺾이는 순간이 수시로 찾아옵니다. 이럴 때 ‘대신 나는 이런 걸 잘해’, ‘이게 아니구나. 다음에는 이렇게 해봐야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긍정적인 생각들로 헤쳐나가려면 자존감이 필요한데, 이 자존감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높일 수 있거든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고 했습니다. 비단 임상뿐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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